[칼럼] 대학입시제도는 왜,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가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1994년, <교실 이데아>(서태지와 아이들))”
이 노래에 열광하며 자란 세대가 이제 중년이 됐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물론 그간의 투쟁으로 체벌이 없어지는 등 교실에서의 인권이 조금 향상되기는 했다. 그러나 졸업 이후의 세상은 정규직-비정규직/도급·하청/특고·플랫폼 등으로 세밀하게 분화됐고, 학교에서 서로를 밀어내며 받아낸 상대평가 등급은 ‘공정한 경쟁’으로 일군 ‘능력’으로 포장되어 평생 진행될 차별을 합리화할 근거가 됐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퇴보했다.
육상경기에서 1등을 하면 금메달을 목에 걸고 박수를 받는다. 거기까지는 당연한 보답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회의 온갖 권력과 자원을 독점한다면 그건 합리적이지 않다. 2등을 했건 꼴등을 했건, 시시각각 변하는 각자의 ‘능력치’로 성과를 내고 그게 맞는 보답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 시스템은 청소년 시기 한순간의 시험 성적으로 평생의 권력과 자원 획득 수준이 결정된다. 이것 자체가 매우 정의롭지 않다.
게다가 그 시험 성적이라는 것도 ‘노력’, ‘공정’보다는 ‘계층 세습’에 가깝다. 수많은 통계자료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릴 때부터 부모의 든든한 경제적 지원이 켜켜이 쌓여야만 이른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아주 극히 일부 ‘환경 극복 사례’가 있다고 해서 전체적 경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학교 교육을 엉망으로 만들고 인권을 유예시킨다는 것이다. 학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대학 못 가면 책임질 거냐”는 말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는다. 생활규정 컨설팅을 가서 용의복장의 완전한 자유를 주라고 하면 “노는 아이들이 입학해서 물 흐려서 대학 못가면 어떡하냐”고 걱정한다. 국제적 추세를 따라 2015개정교육과정을 ‘역량 중심’으로 만들어놓고 2022개정으로 고교학점제를 도입해도 정기고사와 수능과 같은 상대평가를 그대로 둔다면 그 도입 취지를 전혀 실현할 수가 없다.
교사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1%가 입시 경쟁 교육으로 무력감과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선생님, 저 수능에서 이 과목 선택 안 할건데요.” 그러면 교사는 자존감을 내려놓고, 자라고 해야 하나, 다른 과목 공부하라고 해야 하나 고민한다. 의지를 갖고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설계한 수업을 하다가는 “왜 EBS교재로 수업 안 해주세요?”라는 불만에 직면한다. 정기고사든 수행평가든 민원이라도 제기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한다. 그러다가 수능이 끝나면 학교 운영도 사실상 끝난다.
기초학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은 기초학력을 보충해야 하거나 예술·체육·대안·직업 등의 교육이 필요한 학생을 위해 ‘기본수학’, ‘기본영어’ 등 기본 교과목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본 교과목을 개설한 학교가 전북지역에 단 한 개도 없다. 왜일까? 보통 7등급을 받는 학생이 기본수학을 들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공부를 잘해서 원래 1등급을 받는 학생은 불리해진다. 그래서 안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학교에 좋은 뭔가를 만들어놓아도 상위권 학생 입시에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전혀 할 수가 없는 분위기다.
2022개정교육과정의 적용을 받는 학생들이 대학입시를 치르는 2028학년도에는 대학입시제도가 개편될 예정인데, 이에 맞추어 새로운 대입제도를 제안하기 위해 전교조가 방안을 만들었다. 전교조는 1989년 창립할 때부터 참교육을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에 맞서 투쟁해 왔고,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은 참교육을 가로막는 제도의 정점에 있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 제단체들과 여러 노력을 해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개혁안도 입시경쟁을 벗어나 행복한 공교육을 실현하자는 취지로 제안됐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소개하면 내용이 책 한권 분량인데, 아주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지금부터 2027년까지 준비시기를 두어 제도 구축을 완료하고, 2028년부터 두 단계로 체제를 개편한다. 1단계 시기에는 ‘거점 국립대의 공동선발·공동학위제’를 실현해서 대학 서열을 완화하고. 수능은 전과목 5단계 절대평가로 바꾸고, 수시와 정시를 통합하는 등 대입전형을 간소화한다. 2단계 시기는 공동선발·공동학위제 대상을 모든 국립대와 공영형사립대로 확대하고, 대학입학보장제와 대입자격고사를 실시한다.
금산사에 가려면 79번 버스를, 고산에 가려면 535번 버스를 타면 된다. ‘명문 버스’, ‘상위권 버스’ 따위는 없다. 정부는 노선 편성을 하고 몰리는 노선은 증편하고 적자노선은 세금으로 메꾸어준다. 굳이 버스회사들을 국영화하지 않아도 된다. 이걸 ‘버스 준공영제’라고 한다. 대학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자신의 진로와 인생 목적지에 따라 서로 다른 버스를 편한 정류장에서 타고 환승하고 내리면 된다. 그러면 ‘명문 버스’ 타겠다고 청춘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지금 당장 입시제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적 사정이 있다. 필자도 고등학교 교사이고 학생들 입시지도를 하고 수능 잘보라고 응원해줘야 하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유럽 선진국들이 대학을 평준화해서 경쟁입시를 탈피하고 경제적으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완성한 것은 그 전부터 몇십년 동안 전망을 가지고 밑그림을 그리고 열심히 토론했던 과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금 당장 해법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계속 상상하고 나누다보면, 우리 이상이 어느 순간 일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필자 : 김고종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 정책실장)
대안학교 교사. 학생인권에 관심이 많아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학생 시절부터 ‘학벌없는사회’ 운동을 했는데 여전히 숙제를 완수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