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모임 ‘아버지의 해방일지’ 후기


유행하는 책, 남들이 다 읽는 책은 어쩐지 읽기 싫었는데 평화인권연대 독서모임인 <공책모임>에서 12월의 읽는 책으로 선정한 것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20대 때 저자의 ‘빨치산의 딸’을 읽고 ‘진짜 재미 하나도 없네’ 했던 기억이 떠올라 읽기 싫었지만 올해 마지막 토론 책이라 숙제하듯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재미있어 단숨에 읽었다.

책은 빨치산의 딸인 주인공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아버지의 지인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모르던 아버지의 모습을 알게 되고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중에서 평생 아버지를 원수처럼 여기던 작은아버지의 사연은 너무 가슴이 아팠다. 자랑하고 싶은 형을 자랑한 죄로 부친을 죽게 만든 작은아버지의 죄책감은 그의 평생을 알코올 중독으로 살게 했다. 결국 작은아버지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죽어서야 유골이 된 형을 안고 통곡한다. 살아있을 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으면 좋으련만 ‘그 사건을 아는 누구도 말할 수 없었겠지.’라고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게 다가온다. 당시 아홉 살이던 작은아버지가 평생을 감당하고 살기 너무 힘든 기억이었을 것 같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내 부모는 어린 나를 일으켜주지 않았다. 조금 울다가 별수 없이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렇게 자란 나는 누구 앞에서도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울어본 적도 없다. 이게 바로 빨치산의 딸의 본질인 것이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의 딸’을 자신의 정체성을 삼아온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를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그냥 아버지로 호명함으로써 아버지를 해방시킨다.

구례라는 지역 사회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전북 동부 산악지대에서 태어난 나에게도 익숙하다. 동네 담배 가게 할머니는 빨치산 문화선동대 출신이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 얘기 속에서 듣기도 했고, 연좌제로 피해를 본 아버지 지인의 얘기도 들었다. 무엇보다는 “내가 다섯 살 때 빨치산이 산 밑 우리 집을 다 불태워 버렸어. 그 사람들 잡아가서는 다른 동네 어딘가에서 몰살한 후 묻었고 더러는 방죽에 던졌다고 하는데...” 얘기를 하시던 아버지는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라며 괜히 파헤쳐봤자 남은 사람들만 괴로우니 그냥 묻는 게 낫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전쟁을 겪은 세대가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정말 끝이 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글을 쓰기 전 젊은 시절 읽었던 정지아 작가의 ‘빨치산의 딸’이 왜 그렇게 재미없었는지 혹시 내가 잘못 읽은 건 아닌지 궁금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읽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이 책을 들춰보면서 아마도 이 작가의 젊은 시절의 냉소 혹은 자기연민이 글을 읽기 힘들게 했던 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꼭 다시 읽어보리라. 어쩌면 그때와 지금의 나는 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작가가 그랬듯이 나도 사람을 세상을 보는 품이 넓어졌기를 염원하면서 말이다.

문득 우리의 해방일지는 무엇이 되어야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 독서모임에서는 책을 읽은 후기를 나누며, ‘나를 구속하는 것은 ( )이다,’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에서는 책임감, 가부장제, 타인의 시선, 신체 등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2023년은 모두가 자신을 가두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해였으면 좋겠다.

- 글쓴이 : 여은정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