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에 대한 입장. 2000년 8월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진범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를 맡은 군산경찰서가 이달 초 진범 용의자를 긴급체포하고 "유흥비가 필요해 강도살인을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사실 자체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경찰과 전주지검 군산지청 등 수사기관이 새삼스럽게 '직접물증(범행도구)'을 진실 규명의 열쇠로 들고나오는 태도는 어쩐지 기만적으로 보인다. 물증 없는 정황으로, 수사 아닌 고문(폭력)으로, 따라서 합법 아닌 불법으로 이끌어낸 피의자 진술을 '증거'로 하여 한 소년의 인생을 망가뜨린 그들의 원죄는 여전히 지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자백 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진범 용의자들을 석방했다면, 자백 외 증거(그것도 결정적 증거가 될 범행도구)가 없는 최씨는 왜 살인범으로 몰아갔는가? 수사기관은 대답해야 한다. 2000년 당시 수사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하지 않는 한 관련 사법기관들이 진실을 밝히려는 의도가 없다는 의혹은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2. 수사기관의 의무. 수감중인 최씨는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일관되게 무죄 주장을 폈다. 최씨는 최근까지도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봉과 걸레자루로 구타를 당했다")은 물론 친구들까지도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급 수사기관은 이와 같은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경찰의 <직권남용>과 <폭행, 강압수사> 여부에 대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러한 공공연한 의혹에 대해 상급 수사기관이 수사를 회피한다면 이는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다.

3. 사건의 진짜 정황. 우리는 당시 15살 소년이던 최씨가 (현재 검찰이 애써 강조하는) 직접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살인죄가 확정돼 1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2년10개월째 옥살이를 하게 되는 과정 전반에 주목한다. 최씨는 당시 그 나이 또래 많은 아동들처럼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모 다방 배달원으로 일했다. 최씨를 사건 현장 목격자로 조사하다가 경찰은 야속하게도 그를 용의자로 둔갑시켰다. 최씨는 경찰, 검찰 조사 과정은 물론 재판 과정에서도 범행을 철저히 부인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무죄임을 입증할(당연하게도 입증책임은 수사기관에 있다) 만한 정황 설명에 미흡하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의심받았다. 자신을 충분히 변호할 자원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선임된 자신의 국선변호인조차 무죄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최씨는 범행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사건을 맡았던 경찰관들은 유공표창장을 받았다. 특히 당시 익산경찰서장 직무대리 박래우 경위 등 4명은 표창장과 상금까지 받았다(새전북신문, 2003. 6. 9).

4. 우리는 전주지검 군산지청, 군산경찰서, 그리고 전북지방경찰청에 요구한다. 이 사건은 '진범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 진범을 붙잡는 노력은 사건의 실체 규명을 반드시 전제로 해야 한다.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은 '팔은 안쪽으로 굽는' 인정(人情)으로부터 수사기관이 초연해야 할 의무와 용기를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관련 수사기관들은 사건의 진실에 대한 공공연한 의혹이 불거지게 된 원인이 되는 사정들을 철저히 재조사하고, 특히 상급 수사기관은 수사기관의 인권침해와 불법행위 여부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 금암파출소 백경사 살인사건 용의자 가혹행위 논란에서도 보여지듯이 관행적으로 자행하는 수사기관의 자백을 유도하는 가혹, 고문행위를 중단하여야 한다. 수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 속에서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한 증거주의에 입각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전북도민의 인권침해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익산택시기사살인사건의 철저한 재조사를 요구하는 바이다.

2003. 6. 11.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 문규현 김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