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21일(수), 옅은 구름이 낀 맑은 날


지난밤에는 과천 정부청사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에 천막 세 동을 치고 잤더니, 정부청사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오면서 웬 사람들이 천막치고 농성하고 있나 힐끗거립니다. 국민의 정부도 끝나고, 참여 정부가 열렸지만 아직은 저기 빤히 보이는 정부청사 담장이 너무나 높아 보이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공무원들의 또각또각 걸어가는 모습이 왠지 거리감 있어 보입니다.





삼보일배 순례단이 몇 사람 되지 않았으면 더욱 왜소하고 초라해 보였을텐데, 다행히 아침 일찍부터 원불교인들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은 원불교인 삼보일배의 날이라 많은 교무님과 신도 수백명이 오신 것입니다.

출발에 앞서 원불교인들은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와중에도 나오신 이선종 교무님은 처음부터 눈시울을 붉히신 채 기도회에 참여하시다가 인사말씀을 통해 참여하신 교무님과 신도들에게 "한 걸음, 한 걸음 기도수행에 함께 해주시길 부탁하며 우리가 감동시키지 않으면 누가 감동시키겠는가"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쏟으시자 다른 많은 교무님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늘을 감동시키고, 지구를 감동시키고,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자는 말씀과 함께 원불교인들의 삼보일배가 시작되었는데, 참여한 분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늘어나 350여명에 달했으며, 90여명이 삼보일배 고행을 함께 했습니다.





오전 일정이 끝나갈 무렵, 이부영 국회의원님과 시인 김지하 선생님, 연기인 장미희 교수님, 환경연합 최열·임길진 공동대표님 등이 순례단을 방문하셨습니다. 김지하 선생님은 "시를 하나 써서 보내드렸다. 요즘에는 다들 폼만 잡을줄 알았지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운데, 삼보일배를 통해 진정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운동은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시민운동과는 바라보는 눈길이 전혀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가시는 길에 과천을 흐르는 작은 하천을 보시면서 "일본과 유럽에서는 둔치와 제방의 시멘트를 없애고 식물이 살 수 있게 했더니, 물이 자유로워지고 죽었던 물고기와 수초가 살아났다. 뻘도 똑같다. 갯물과 민물만 다를 뿐이다. 그대로 놔둬야 자연 정화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먹이를 생산하여 어류와 조개류가 살 수 있다. 사람들은 뻘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나같이 목포 영산강 가에서 배꼽이 떨어진 사람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중학교 때까지 뻘에서 멱감고 장난치던 기억이 있는데, 뻘 없는 고향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시며 새만금 간척사업이 돈만 많이 쓰고 헛짓을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과천 시내를 조금 벗어난 관문체육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수경 스님께서는 점심을 드시지 못하셨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리 세끼를 드시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머리가 아프고 소화도 잘 안된다고 하시며 식사량이 줄어들더니 어제 저녁부터는 아무 것도 드시지 못했습니다. 지켜보는 저희들이 더욱 안절부절입니다.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2시에 오후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한두 시간만 가면 남태령 고개마루가 나오고 서울이 내려다보일 것입니다. 그 남태령을 향해 삼보일배 고행이 이어지던 도중 2시 25분에 스님께서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쉬어갈 장소가 아니었는데도 스님께서는 무척이나 힘이 드셨는지 가시던 걸음을 멈추고 앉으시려다 그대로 주저앉고 쓰러지셨습니다. 순례단은 바로 119에 연락하여 구급차를 부르고 그늘을 만들어주고 몸을 식혀드렸는데 10분쯤 지나자 도착했습니다. 의식이 없으신 스님을 구급차에 태우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이동하여, 2시 55분에 여의도 가톨릭대 성모병원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나서 윗도리를 벗기고 병원복으로 갈아입혔지만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의식이 없으시고, 숨을 쉬는지 마는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꼼짝하지 않으셔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간단히 혈압을 재고, 며칠 전부터 두통을 호소하셨다기에 혹시 뇌에 이상이 있을까 염려하여 컴퓨터단층촬영(CT 촬영)을 했으며, 엑스레이로 폐와 척추 사진을 찍었습니다. 게다가 스님은 눈이 매우 좋지 않으신데, 녹내장이 있어 과로하시면 실명할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더욱 걱정이 커졌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가 의사 선생님께서 초기 진료결과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300여 킬로미터를 삼보일배 고행으로 오시느라 심한 탈진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충분한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다. 위독한 상태는 아닌 것 같지만, 자세한 것은 검사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겠다"는 의사님 소견 발표가 있었습니다.

원래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어수선한 응급실인데다 취재진까지 몰려와 안정을 취하기 어렵자 병실로 옮기려고 알아보았더니 내일까지는 병실을 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신, 병원에서는 진료실을 하나 내주셔서 잠시 쉬실 수 있었는데, 다른 종합병원에서 마침 빈 병실을 구했기 때문에 오후 6시쯤에는 병원을 옮기셨습니다.

다행히 의식은 돌아오셨는데, 정신을 차리시자 순례단이 있는 과천의 천막으로 돌아가시겠다고 하셔서, 이를 말리느라 애먹었습니다. 매우 심하게 탈진한 상태이므로 지금은 몸을 움직이기 힘들며,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에서 탈진하셨기 때문에 현재,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의사 검진 결과 근육 세포가 파괴되고 있어 정밀검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밤 10시 현재, 아직도 전혀 거동을 못하실 뿐만 아니라 머리가 많이 아프시고, 계속 구토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두 명의 간병인이 병원에 있으며, 외부 방문객은 엄격히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입원하고 계신 병원 이름도 밝히지 않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스님께서 빨리 회복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은 군포 수리사, 점심은 관악산 연주암에서 각각 준비해주셨습니다.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성직자들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상황에서 삼보일배 수행을 계속해온 순례단은 서울 입성을 앞두고 5월 22일(목) 하루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성직자들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온 길 :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 관문체육공원 (2.7km /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286.3km)

※앞으로 갈 길 : 경기도 과천시 - <5월 22일은 휴식> - 남태령 - 서울 사당동 - 서울대 입구(5월 23일) - 보라매공원 앞(5월 24일) - 여의도(5월 25∼28일) - 신촌 - 아현동(5월 29일) - 서울역 - 명동(5월 31일) - 조계사 - 광화문 - 시청(5월 31일)

<일정은 날씨를 비롯한 여러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전북 부안군 계화도에서는 지역주민 고은식님께서 홀로 삼보일배를 하고계십니다. 지난 5월 7일부터 시작한 계화도의 삼보일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http://nongbalge.or.kr


※삼보일배 도보순례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다음의 참가수칙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도보순례단 참가 신청은 3일전까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 도보순례단의 잠자리와 식사는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 도보순례단에 참여하시는 분은 삼보일배 진행팀에서 분담되는 실무 및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만금갯벌을 살려야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 준비물 : 개인침낭, 취사도구, 텐트, 물컵, 수건 등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 순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