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성명] 무책임한 형사처벌 확대 추진은 사회에 유해할 뿐
- 정부의 ‘촉법소년 연령 하향’ 정책에 반대한다
● 윤석열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이른바 ‘촉법소년 연령 하향’, 곧 형사처벌 대상 연령 기준을 낮추는 정책을 들고 나왔다. 법무부는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 TF’를 꾸리고 형사처벌 대상 연령을 만 14세에서 그 이하로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만의 것이 아니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역시 유사한 공약을 제시한 바 있으며, 문재인 정부도 형사처벌 대상 연령 기준을 만 13세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 이에 대하여 과거에도 청소년인권단체들은 여러 차례 비판하는 의견을 전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속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표명했으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역시 2019년 형사 처벌 대상 최저 연령을 만 14세로 유지하라고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했다. 우리는 이를 무시한 채 형사처벌 연령 하향에 매몰되어 정책을 추진하는 건, 사람들의 오해와 청소년 혐오에 무책임하게 동조하는 반인권적·비과학적 행태라고 평가한다.
● 현행 소년사법 제도의 문제점은 많다. 부족한 인력과 예산은 물론이요, 조치를 취하더라도 형벌법령을 위반한 청소년의 삶을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조치와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하곤 한다. 게다가 보호처분 등 소년사법 제도는 형사처벌이 아니란 이유로 사실상 자유 박탈의 처벌인 경우에도 신중하게 시행되지 않고 있다. 가정 환경이 불안정하거나 학교 재학 중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더 강한 처벌을 받게 되는 일이 있으며, 시설 내 인권 문제도 제대로 감독되지 않아 구금된 청소년이 자의적 폭력에 노출되고 구금 기간이 연장되는 등의 문제가 일어난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회복을 위한 제도도 미비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짚으며 현행 제도가 적절하고 효과적인지부터 점검해야 할 판국에, 형사처벌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은 ‘범죄자를 처벌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단순하고도 무책임한 방향을 취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 그 배경에 있는 사람들의 ‘형벌법령을 위반한 청소년에 대한 처벌이 불가하다’는 인식은 언론 및 미디어가 조장한 오해이다.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 역시 범죄를 저지른 경우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벌과 손해배상 청구 등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은 이미 2007년, 소년원 구금을 비롯해 보호처분이 가능한 연령을 ‘만 12세 이상’에서 ‘만 10세 이상’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때문에 한국의 ‘형사 책임 연령’은 사실상 만 10세 이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도 일단 형사적 처벌이 가능케 하자는 것은 대중의 범죄에 대한 분노와 불만에 1차원적으로 응답하는 데 그치는 단견이다. ‘어리니까 아무 처벌 안 받는다’라는 실제와 다른 잘못된 정보의 확산은 범죄를 조장하는 효과마저 낳고 있다. 이런 오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정부는 오히려 ‘처벌을 못 해서 범죄가 일어난다’는 메시지에 동조하며 반대로 가고 있다.
● 나아가 우리는, ‘촉법소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말들이 청소년인권에 대한 반감과 소수자 혐오의 정동을 담고 있으며, 형사처벌 확대 정책 추진이 거기에 힘을 싣는 작용을 할 것임을 우려한다. ‘촉법소년’ 문제라 부르는 것 자체가 ‘만 14세 미만 청소년들이 문제’라는 착시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소수자가 자신들을 보호, 지원하는 제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여 문제라는 스토리는 소위 ‘민식이법’ 논란이나 학생인권조례, 차별금지법 등에 대한 반발에서도 반복 재생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청소년을 폭력·강제력으로 통제해야 할 문제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체벌을 비롯해 인권 침해를 옹호하는 목소리로도 연결되고 있다. 청소년을 ‘인간이 덜 된 존재’로, 특히 범죄에 연루된 청소년을 처벌하고 배제해야 할 존재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경계하고 극복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 우리는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무고하니 온정을 베풀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청소년을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 바로 청소년에 대한 타자화와 엄벌주의이기 때문이다. 형벌법령을 위반한 청소년에 대한 사법 제도는 청소년의 특성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적절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반영하여야 한다. 형벌법령을 위반한 청소년에 대한 조치는 재범 방지 등 사회의 공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리고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소수자에 대한 지원과 책임 분담의 취지로 이루어져야 한다. “최고의 형사 정책은 사회 정책이다”라는 격언은 우리 사회의 범죄에 대한 관점과 정책을 돌아보게 하는 말인 동시에 청소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윤석열 정부가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 TF’의 방향과 활동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연령 기준에 초점을 맞춘 논의는 범죄 발생 감소 및 재범 예방에도 실질적인 효과가 없을 것이며, 섣부른 형사처벌 확대는 배경 및 여건이 열악한 청소년들에게만 더 심한 처벌이 가해질 위험성도 크다. 이는 모두의 인권 보장과 공익 증진에 필요한 정책 논의는 뒷전으로 만들 위험이 큰, 무책임하고 사회에 유해한 접근 방식이다. 우리는 정부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 등 국제인권기준을 준수하며, 사법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은 종합적인 교육·복지·사회 정책에 대한 점검과 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 나아가 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 현상에 적극 대응하여 차별과 배제를 없애 나갈 것을 요구한다.
2022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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