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차별과 혐오에 지워질 수 없는 우리가 여기에 있다.

지금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Visibility)은 매년 3월 31일, 전 세계에서 트랜스젠더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날이다. 2009년에 시작된 이 날을 통해 다양한 트랜스젠더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고 단 하루가 아니라 365일 동안 가시화가 필요함을 외치고 있다. 이러한 외침에 응답하듯 무지와 편견으로 시작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걷어내고 당사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2018년 개정된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에선 트랜스젠더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위해, 기존의 정신질환 하위의 ‘성주체성 장애’라는 진단명을 삭제하고, 성건강상태 하위의 ‘성별 불일치’라는 진단명으로 재분류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올해 3월 31일을 맞이하고 있다. 비정규직 교사와 정치인으로서 살아왔고 퀴어문화축제를 만들어왔던 활동가, 트랜스젠더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군 복무를 이어가려 했으나 강제전역 된 육군하사가 우리 사회에 이별을 고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았던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의 낙인찍기 속에 세상을 등져야만 했음을 다시금 떠올렸다. 트랜스젠더의 삶과 권리를 허용할 수 없다는 반인권적이고 낡은 사고가 만들어낸 체계가 우리의 이웃, 동료, 친구, 가족을 지우려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회 영역 전반에서 트랜스젠더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장벽이 만들어지며 인간의 존엄함을 보장하지 않고 있음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만19세 이상 응답자의 65.3%가 1년 동안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구직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구직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트랜스젠더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외면되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이에 차별과 혐오의 폐해는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존엄의 자리로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차별과 혐오의 사슬이 결국 모두를 억압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이러한 문제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건만 해결의 책임이 있는 이들은 나서지 않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구성된 각자의 존엄함을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이 모욕 받는 주권자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차별과 혐오에 대한 방조며, 군림(君臨)일 뿐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고 평등법이 권고되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21대 국회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정부·여당과 국회, 특히 전북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엄중하게 말한다. 도민들을 대신해 차별 없이 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안을 도의회에서 지지하자는 목소리에 몰상식한 혐오를 뿌리고, 지역사회를 평등하게 만들자는 조례를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부결시킨 지역 정치인들도 경청하라. ‘나중에’를 언급하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차별에 대한 합의를 승인하겠다는 말과 사실상 같다.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여기며 인간의 존엄함을 찬반과 합의의 대상으로 올리는 것이야 말로 폭력이다. 차별과 혐오가 우리의 숨통을 조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의 민생 과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요구한다.

성별정체성을 비롯하여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평등사회를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지금 당장 제정하라.

2021. 3. 30.

3.31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이하여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급히 촉구하는 전북지역 도민과 시민사회단체


[첨부1] 한상구 전라북도성소수자모임열린문 비대위원 발언내용

우선 아픈 마음으로 온전히 추모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이 지역의 성소수자 활동가를 대표하여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떠나보내야 했던 3명의 성소수자 활동가를 추모하고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이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같이 함께 해주신 동지 여러분들게 안부의 인사말을 전합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 성소수자 여러분 다들 괜찮으신가요, 마음의 건강은 챙기고 계신가요. 다시 일어나 살아가기가 힘드시다면 잠깐 주저앉아 쉬어가는 건 어떠신가요. 우리는 3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 사회를 살아내던 트랜스 젠더 동지 분들의 죽음 맞이했습니다. 회복할 시간도 없이 부고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성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는 혐오와 차별로 가득 차있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성소수자를 이슈거리로 삼아 혐오 발언과 차별을 서슴치 않게 자행하곤 합니다. 과연 선거철에만 국한되어있는 문제일까요?

그냥 살아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숨쉬는, 그리고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 전북도의회 건물에 계신 도의원님, 당신들이 사는 세상은 어떠신가요? 혐오가 없는 세상인가요? 차별은 없으십니까? 평등하십니까?

누구는 매일 이 세상의 차별에 버티면서 매일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고 또는 친구의 죽음을 맞이하고, 누군가의 혐오 발언에 고통스러워하며 우리 존재를 인정해달라고 매일 외치고 있습니다. 여기계신 의원님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계자님들, 저희의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이렇게 외치는 순간에도 우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모습은 보이지는 투명인간인 것만 같습니다.

만약 당신들의 귀에도 저희의 목소리가 들리신다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을 대변해야 하는 의원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화를 멈추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 해주세요.

퀴어들이 모이는 곳이 더 이상 각 지역의 퀴어문화축제 아니면 장례식장이라는 말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죽지말고 살아내자 외쳤던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서 모인 사람들끼리 또 다시 한번 죽지 말자라고 외치고 싶지 않습니다. 같이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우리로 혐오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간곡히 우리 사회의 모든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성소수자도 내가 나답게, 나로, 혐오와 차별받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 속에서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성소수자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꼭 살아남아서 이 세상이 변하는 것을 같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첨부2] 유승권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발언내용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차별받지 아니 하며 존엄성에 가치를 존중받으며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 가는 거라 배워왔고 헌법에도 명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나와 생김새 다르다고 나와 행동이 다르다고 차별 받고 어디에서도 인정받기 어렵고 지역사회 부류에서 섞일 수 없는 게 과연 맞다고 생각 하십니까. 이런 현실이 인간의 존엄성 가치입니까. 아직도 사회 약자 중에서도 젠더라는 이유로 지역사회 나오고 싶어도 혐오라는 사회 인식 때문에 집에서 나오기 두려워하는 젠더 장애인들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저는 도의회 계신 의원님들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도지사님께 묻고 싶습니다. 젠더에 상관없이 국가나 행정자치단체에서 하는 최소한에 인간다운 삶과 복지서비스를 보장받고 있는지 한번쯤은 생각 해보셨는지요? 그분들 위해 최소한에 요구를 받아주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냥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가요. 아니면 표심 잡기위해 그들을 버리시는 건가요. 표심이 낮으면 그들은 도민도 아닌가요? 국가나 지자체에서 모르쇠하면 그들은 누구한테 의지해야 되나요? 도대체 왜 ‘뭣이 중허기’에 수수방관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또한 아직까지도 감수성 수준이 향상 되지 못한 행정자치단체장 중에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장애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지 아시냐고 합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행복에 기준이 무엇일까요? 한두시간 있다가 그분들이 미소 짓고 밝게 있는 모습을 봤을 때 행복해 보인다고 하는 것인지요? 시설에서 프로그램 있을 때만 단체로 나와 야외 활동 하는게 행복한 것일까요? 누구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내 개인적 일상생활 해보지도 못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거 먹지도 못하고, 내가 입고 싶은 옷 한 벌도 마음대로 사지 못하고, 보고 싶은 거 마음대로 보지 못하는 게 시설이고 사생활이 없는 곳이 시설입니다. 이런 곳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는지요?

그래서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단 하루 만이라도 이 사람들에게 내 개인적인 삶을 제공해주어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하자고 기회를 주자고 말 하는 겁니다. 왜 그런 기회마저 박탈당하면서 당사자 기준이 아닌 행정 공무원, 인권담당관, 시설 장, 종사자 기준에서 생각하고 저 사람은 못한다고 판단하십니까?

우리는 이런 차별에 저항하며 끝까지 인간다운 삶과 시설이 아닌 우리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게 우리 모두 연대투쟁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