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서]
" 성폭력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명예훼손 역고소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
1993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후, 성폭력 가해자들은 법적 처벌에 대해 노골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으나 최근 1∼2년 사이에 성폭력 가해자들이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역고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2000년 동국대 K교수의 성추행 혐의를 둘러싼 사건은 2002년 6월, K교수에 의해 피해 제자 M씨와 동료 여교수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K교수가 이런 행위를 한 배경에는 성폭력 가해(혐의)자들이 성폭력 피해자와 이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나 지지집단의 성폭력 추방운동을 명예훼손으로 무차별 고소하는 일련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성폭력의 피해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이고 여성차별적 법,제도를 악용한 명예훼손 역고소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대해 여성 및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지난 7월 '성폭력추방운동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이경숙, 최현무)를 발족한 바 있다.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첫번째 활동으로 성추행 피해 제자 M씨와 피해자를 지원한 동국대 조 은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한 동국대 K교수의 부당한 행위를 알리고 명예훼손 무혐의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검찰청에 제출한 바 있다.
동국대 조 은 교수는 지난 11월 9일 검찰로부터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에 대하여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 지지자들의 성폭력 추방운동이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정당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자 K교수는 슬그머니 피해자 M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였다. M씨는 K교수가 M씨를 상대로 한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에 대하여 경찰에서 무혐의 의견으로 송치된 상태였으며,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K교수가 M씨에 대해 소를 취하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K교수는 피해자에게 사죄를 하기는 커녕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여 피해자에게 정신적, 경제적인 고통을 가하더니, 피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아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마저 봉쇄하여 버림으로써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가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23일 판결 선고를 불과 7일 남겨둔 상황에서 KBS 노조 전 부위원장인 K씨가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원회'와 피해자 2인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형사고소를 취하하는 사건이 있었다.
즉 이들은 성폭력의 가해 의혹을 명예훼손이라는 또 다른 법적 공방으로 몰아가 성폭력 피해자와 그를 지원하는 개인 및 단체들을 오히려 피의자로 몰아넣고, 성폭력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이중삼중의 고통을 가하는 것도 모자라, 결정적인 순간에 고소를 취하함으로써 피해자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기회마저도 박탈하는 횡포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성폭력 관련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은 20여건에 달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지식인 등 우리사회의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단 및 사회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성폭력 가해(혐의)자들은 반성은 커녕 피해사실을 호소하는 당사자와 그를 돕는 대책위나 여성단체 등을‘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함으로써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들을 제한하고 또한 침묵까지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10월에는 성폭력 가해자인 K(당시 경산 K대학교 교수)와 L(당시 대구 K대학교 교수)이 대구여성의전화 前공동대표 2인(김혜순, 이두옥)을 사이버명예훼손죄(정보통신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고소하여 벌금형(합계 400만원) 선고판결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K교수는 이미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고, L교수는 학교에서 해임당했으며 이미 법정에서 성추행 사실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약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여성단체의 공익활동"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한 판결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국대 K교수의 고소취하, KBS 노조 K씨의 고소취하와 같은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성폭력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성폭력 사실을 알리고 그에 대응하는 활동을 제한시킬 목적으로 명예훼손 고소가 남발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은 일반적인 명예훼손죄와는 달리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죽암휴게소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무혐의 처분, 조은 교수에 대한 명예훼손 무혐의 처분 등 성추행 가해자들이 피해자와 지원단체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는 행위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은 온당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의 이러한 태도는 지금까지 권력을 가진 남성가해(혐의)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였던 수사관행에 쐐기를 박고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흐름을 차단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만들고 성폭력 추방운동의 공익성과 정당성을 후퇴시키는 "성폭력 가해(혐의)자의 명예훼손 역고소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만 수사가 착수되는 친고죄를 전면 폐지하여 가해자의 법적인 보복에 피해자가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성폭력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
2002. 12. 5
성폭력추방운동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공동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