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공안통치보다는 정치적 중립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일해야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다시 한 번 공안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청와대가 위장전입, 다운 계약서, 병역 기피 등 갖가지 의혹을 무릅쓰고 임용을 강행한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레임덕에 접어든 이명박 정권의 개가 되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하겠다고 나선 것이고, 이를 통해 내년의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대격변기에 진보정당과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검찰권을 총동원해서 탄압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이로써 한상대 총장 치하의 검찰에게는 검찰의 개혁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 분명해졌다.
이미 현 정권에서 검찰은 지나치게 공안부문이 비대화되었음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국가보안법 관련한 검찰의 행태를 짚어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국제사회에서는 비웃음꺼리밖에 안 되는 반인권 악법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유엔에서는 대한민국의 국가보고서를 심의할 때마다 거듭하여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권고하여 왔고, 2008년 5월에는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미국 대표조차 국가보안법의 남용을 막기 위한 개정을 권고했고, 2011년 6월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 및 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현 정권에서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강행하여 작년 입건된 94건 중 단 20건만이 법원이 유죄로 인정되었으며, 이 중 13건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런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이른바 ‘왕재산’ 사건의 경우는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마구잡이식 압수수색과 피의자, 참고인 소환조사를 벌이고, 각종 인권침해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보안법의 오남용의 잘못을 시정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검찰총장이 국가보안법의 오남용을 부추기는 발언이나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비단 국가보안법의 오남용만이 아니다.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무차별적 수사와 기소, 광우병의 위험성을 다룬 MBC PD수첩에 대한 무리한 기소, 네티즌의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에 대한 정치적 기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사문화된) 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통신죄를 이용한 수사 및 기소, 용산과잉진압에 대한 편파적 수사와 수사기록 비공개 등으로 인해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런 연유로 2009년 4월 <법률신문>이 법조인들(변호사와 법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법치주의 확립을 위한 검찰의 과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것이 총 48.9%를 차지했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와 그로 인한 노 전대통령의 서거 등으로 검찰에 대한 신뢰, 특히 그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는 더욱 하락하였다. 이에 검찰의 중립성에 대하여 <한겨레> 신문이 2009년 10월에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무려 78.8%가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답변이 나왔을 정도다.
권력형 비리에는 애써 눈감고, 민생치안은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정권과 경영자의 편만 들어왔던 검찰을 더더욱 정치검찰로 몰라가겠다는 신임 검찰총장의 발언은 그래서 더욱 우려스럽다. 검찰총장에게는 검찰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검찰이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단지 검찰이라는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사법적 절차는 그 사회의 분쟁이나 다툼을 안정적으로 해결하여 사회전체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인데, 이 사법절차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검찰이 중립적이지 못하고 특정 정치세력에 의하여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사회의 안정성이 훼손되는 것이자 더 나아가 민주주의적 질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신임 검찰총장이 해야 할 일은 진보정당과 진보적 사회운동을 탄압하는데 앞장서라고 검찰을 내모는 것이 아니라, 공명정대한 법 집행과 민생치안과 권력형, 자본형 비리 척결을 위한 전쟁을 선포하고 검찰권을 행사하여 땅에 떨어진 검찰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신임 검찰총장이 해야 할 일은 청와대에 대한 충성을 외치며, 정치검찰의 모습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편향의 검찰을 제 자리로 돌려 세워 국민의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한 본연의 모습을 정립하는 일이다.
우리는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발언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엄정한 선거관리를 하겠다고 선언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을 통해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짓을 되풀이한다면, 우리는 정치검찰의 비참한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인권을 짓밟는 검찰을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2011년 8월 15일
인권단체연석회의
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구속노동자후원회,광주인권운동센터,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다산인권센터,대항지구화행동,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노동자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HIV/AIDS인권연대나누리+,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울산인권운동연대,원불교인권위원회,이주인권연대,인권교육센터‘들’,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청주노동인권센터, 평화인권연대,한국교회인권센터,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DPI,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전국 44개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