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와 협력 없는 요식행위에 들러리가 될 수 없습니다.
<유엔인권조약기구 시스템 강화를 위한 국제 시민단체 컨설테이션>에 불참하며

2011년 3월 21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한국여성단체연합, 유엔인권정책센터, 인권운동사랑방, 한국인권재단 등 6개 단체에 <유엔인권조약기구 시스템 강화를 위한 국제 시민단체 컨설테이션>에 3월 25일까지 참가여부를 알려달라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모든 국제인권조약들은 인권보장을 위한 국제사회의 모색으로 만들어진 인류사회의 소중한 약속들이기에, 유엔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제인권조약기구의 강화를 위한 회의와 연구 등은 매우 중요한 의제이며,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도 깊은 관심과 노력을 보여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인권위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위 단체들을 비롯한 한국의 인권시민단체들은 국가인권위가 준비하는 이번 국제회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제기합니다.

첫째, 이번 회의의 주된 의제가 국제인권조약기구 강화를 위해 국제시민단체 사이와 어떻게 협의를 잘 이루어낼 것인가임에도 불구하고, 인권위는 한국의 시민사회와는 어떠한 사전 준비도, 협의도 없이 본 행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서 인권위가 국제회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으며, 초청을 받은 6개 단체 역시 이번 국제회의가 어떠한 내용인지, 어떠한 구성과 위상으로 개최되는 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국가인권옹호기구와 인권시민단체와의 협력과 의사소통은 국가인권옹호기구의 재량이나 배려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현병철 위원장이 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인권위는 시민단체, 인권단체와의 협력을 등한시하고 무시하여 왔습니다. 그 예는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인권위 성차별조사관의 해임과 관련하여 여성단체들이 요구한 위원장과의 면담요청을 거부한다든가, 인권위가 관계된 교육에서 특정 단체의 참여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더구나 이번 회의의 의제가 ‘시민단체 컨설테이션’(NGO의 역할)이라면 기획부터 준비까지 인권위와 시민단체와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권위는 그러한 준비과정에는 전혀 참여시키지 않고 한 달도 남지 않은 이제 와서 영어로 된 초청장과 프로그램 순서만 달랑 메일로 보내주었을 뿐입니다. 국제인권조약기구의 감시활동을 꾸준히 해온 한국의 인권시민단체들이 어떠한 일을 했고, 어떠한 어려움과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시민단체와 인권위의 진솔한 대화와 협력이 전혀 없었던 이번 행사는 그 개최 취지에 어긋납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국제회의는 국가인권옹호기구가 갖추어야 할 민주성과 투명성의 원칙, 인권단체들과의 상호협력, 협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요식적인 행위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 행사가 거둘 성과 또한 불을 보듯 명확합니다.

둘째, 인권위가 위와 같은 협력의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급박하게 이러한 행사를 개최하려는 것에 다른 의도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는 인권위가 위와 같은 사전 준비 없는 대규모의 국제행사를 급작스럽게 유치하여 개최하는 실질적인 이유로, 인권위가 5월 ICC(국가인권기구간 국제조정회의)의 한국 인권위 등급 심사를 앞두고 그동안 추락된 인권위의 국내외적 위신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취임한 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라고 칭송받았던 한국의 인권위는 가장 저열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후퇴하였습니다. 현병철 위원장은 스스로 인권위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으며, 전원위에서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서슴지 않았고 국가인권옹호기구의 기능과 목적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인권위의 권한과 능력을 부인하며, 이에 반대하는 상임인권위원들의 권한을 축소시키고자 시도하는 등, 끊임없는 문제를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최근에는 참다못한 인권위 직원들이 노조를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자, 노조 부위원장을 해고까지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권위의 설립 이후 지속되어 오던 시민단체 및 인권단체들과의 소통과 협의는 현재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한국의 인권단체들과 인권위의 전문자문위원직을 사퇴한 68명의  인권전문가들은 인권위원회의 독립성 훼손을 가져 온 현병철 위원장이 무엇보다도 먼저 사퇴할 것, 그동안의 과오를 반성하여 다시 인권위를 재정립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금까지 그 요청에 무응답과 무시로 일관하여 왔습니다.

그러한 인권위가 이제 와서 낯색을 바꾸어 6개 인권시민단체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는 것은 참으로 황당하기까지 한 제안입니다. 지금까지의 과오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나 진취적인 평가 없이, 인권시민단체들이 인권위가 개최한 국제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내외에 보여줌으로써,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추락한 인권위의 위상과 그 현실에 대해 분바르기를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가 강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권시민단체들은 그와 같은 인권위의 의도에 협력할 수 없습니다. 인권위가 진정 인권시민단체들과의 협력 하에 이번 행사를 개최하고자 했다면, 적어도 준비단계에서부터 함께 하려는 자세와 요청을 했어야 마땅합니다. 불과 며칠을 앞두고 초청장을 보내어서 참석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것은 이번 행사의 취지에 어긋납니다. 그 행사에 초청받아 국내/국제적으로 인권위에 아무 일도 없었고 인권위와 한국시민사회가 잘 소통하는 것처럼 비춰질 가능성에 대해 우리 인권시민단체들은 큰 우려를 감출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인권시민단체들은 인권위가 개최하려는 ‘유엔인권조약기구 시스템 강화를 위한 국제 시민단체 컨설테이션’ 국제회의에 그 취지나 내용 어디에도 동의할 수가 없어서 참여를 거부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 우리사회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소중한 결실인 인권위가 정부와 권력의 인권침해에 면죄부를 주는 알리바이기구로 전락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인권위가 한국의 시민사회와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진실된 협력체계를 복구하기를 진심으로 촉구합니다.

2011년 3월 27일

경남여성단체연합, 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국제민주연대, 군인권센터, 기독여민회, 다산인권센터,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구여성회, 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대전여민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사회교육원, 불교인권위원회,  새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수원여성회, 여성사회교육원, 울산여성회, 울산인권운동연대, 유엔인권정책센터,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북여성단체연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평화인권센터,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천주교여성공동체,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충북여성민우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인권재단, 함께하는주부모임 (전국 52개 인권시민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