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 선언 62주년을 맞이하며
“인권은 사라지고, 인권위는 죽었다.”
오늘 12월 10일은 누구나 차별 없이 침해받지 않고 누려야 할 인간의 권리로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 지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렇게 뜻 깊은 날, 여전히 인권을 탄압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인권 침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없다. 역사의 발전만큼 인권도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발전이 아닌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하여 강남대로 노숙이나 공장에서 농성을 해야 하고, 공장입구에서 고공농성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심지어 재벌이 노동자를 구타하고 뻔뻔하게 돈을 던질 뿐 아니라, 노조간부를 납치하는 눈뜨고 보지 못할 일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과 군인이 목숨을 잃었고 한반도 평화는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 더 많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군사적 긴장상황이지만 남한과 북한 정부는 서로 보복과 응징을 내뱉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한나라당은 4대강을 죽이는데 쓸 돈을 만들기 위해 내년 예산안과 각종 인권후퇴법안, 한미FTA 협상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도 모자라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것이 정의다”라는 망언을 하였다.
사회복지예산은 줄이고, 부자들의 배만을 채우는 친서민 정책을 강행하는 현실에서 사회권이 설 자리가 있겠는가. 장애인등급심사제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기는 요원해졌고, 장애인의 인권보장은 뒤로 후퇴하였다. 무상급식을 빨갱이나 하는 짓이라 몰아세웠으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약속했지만 아직 법안조차 마련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발언이 넘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제재방안도 없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이영조 무자격자를 임명하였고, 그는 제주4.3 항쟁을 “공산주의세력이 한 폭동”이라는 망언까지 하며 과거청산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G20를 개최한다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했을 뿐 아니라 G20를 빌미로 노점상과 노숙인을 단속하고 이주노동자를 단속추방하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다 추락사한 베트남노동자 찐 꽁 꾸안 씨처럼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인권후퇴의 현실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욱 참담하고 비통하다. 인권 침해받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인권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야 할 인권위가 거꾸로 인권을 후퇴시키는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알리바이기구가 되어가고 있다.
인권위의 생명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다. 인권위 국가 권력의 침해를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하나 이를 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인수위원회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화하려 했고 무산되자 21%조직축소를 감행하는 등 인권위 독립성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인권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고 지식도 없이 정권 눈치 보기에만 바쁜 '현병철'씨를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인권위는 ‘국가이권위’가 되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 인권위 운영과 정부 눈치보기를 비판하며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 조국 비상임위원, 67명의 전문 자문 상담 위원들이 줄줄이 사퇴하였다. 급기야 지난 12월 3일에는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권활동가들이 활동보조서비스 보장과 현병철 위원장 사퇴 촉구 농성을 하자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감시해야 할 인권위가 경찰에게 시설보호 요청을 하여 공권력을 투입했다. 또한 인권위는 엘리베이터 작동 중단,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막으며 장애인 이동권 마저 무참히 파괴했다.
인권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인권위를 보며 이주노동자방송, 인권논문 우수상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에세이상 고등부대상 김은총님, 인권영상공모전 대상 선철규 님, 인권논문 최우수상 이상윤 님은 “현병철 위원장이 주는 상은 받지 않겠다”며 상을 거부하였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과 인권이 살아있기 위해서, 현 위원장이 사퇴하고 인권위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인권위의 반인권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전원위원회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및 북한 주민에 대한 정보접근권 부여 권고를 의결했다. 한국의 인권 사안에는 무지하고 외면한 채,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을 임명할 당시 "북한 인권에 힘써 달라"는 말에 충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권위를 파괴하고 인권의 가치를 모독하고 있는 현병철 위원장에게 인권의 가치와 이해를 돕기 위해 세계인권선언문과 사퇴촉구 서명지를 전달 할 것이다.
인권을 모독하며 인권 없는 인권위를 만든 현병철 위원장은 즉각 사퇴하라! 그것이 오늘 세계인권선언일 62주년을 맞아 현병철 위원장이 인권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인권후퇴와 민주주의 파괴를 중단하라!
2010년 12월, 우리 모두 인권후퇴와 차별에 맞서 저항하고 있지만, 인권이 여물기에는 아직 멀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맞잡은 연대의 손이 주는 따스한 온기가, 저항의 열기가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피는 불씨’임을 안다. 그러하기에 ‘연대하는 인간들이 탐욕의 권력을 이겨낸다’는 단순한 진리를 믿으며, 계속 싸워나갈 것을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결의한다.
2010. 12. 10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