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무노조 경영의 신화를 깨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전 삼성구조본의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 국세청장 구속을 시작으로 김 변호사가 확보하고 있는 내부 문건의 내용과 관계된 비리 인사들이 하나둘 공개되고 있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검찰을 향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삼성을 고발했다. 한편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대선 주자들은 입을 모아 특검을 실시할 것을 주장했으며 그간 어떠한 대응책도 내지 못했던 청와대에서 조차 특검 실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바야흐로 ‘삼성 공화국’이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인 상황이다.
소위 ‘삼성공화국’에 대한 위협은 비단 이번 사건 뿐만은 아니었다. 지난 2005년 X파일 사건은 정치자금과 관련한 삼성의 비리를 공개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검찰은 수개월에 걸친 수사에도 불구하고 불법 도청된 자료를 수사의 근거로 삼지 않았고, 삼성 경영진의 증언만을 토대로 무혐의 처리해 버렸다. 그 뿐인가.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죽은 사람의 신원까지 도용해 노동자들을 감시했던 ‘유령의 친구찾기’ 사건은 주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주목을 끌었지만 정작 사건을 담당한 검찰에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삼성에게 또 다시 특혜를 베풀었다. 결국 삼성 공화국에 작은 흠집조차 내지 못한 채 이 두 사건 모두 흐지부지 마무리 되었고 초일류 기업 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삼성 공화국’이 가진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보다는 특검 실시 여부에만 초점이 모아지면서 정경유착에 대해 얼마나 철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이 지금의 권력을 갖게 도와준 막강한 비자금의 출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삼성이 ‘떡값’으로 날린 그 비자금이란 실상 노동 3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지내야 했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노동의 대가를 가로챈 결과이다. 또한 노동자 탄압, 노조 설립 파괴 작전, 집회 방해 공작 등 노동자를 착취하는 삼성의 기술은 하나의 매뉴얼로서 타 기업들에게 전파되어 한국의 노동 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결국 ‘세계 속의 기업, 삼성’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은 수많은 삼성 노동자들의 인권 유린을 통해 만들어진, 피로 얼룩진 명성인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삼성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그 권력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이 단순히 정치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고 누가 비리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만 초점이 맞추어 진다면, 노동자를 착취하는 거대 괴물 ‘삼성’의 실체는 여전히 건재할 수밖에 없다. 비리 공무원들의 문제는 비단 그들의 윤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책임져야 했던 노동자들의 인권 수호에 대해 외면하며 자신의 책임을 방기했다는 점이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분명 그간 삼성이 주도해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좋은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그 수많은 기회를 놓쳐왔던 것도 사실이다. 특검이 실시되어 모든 비리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뇌물 수수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지며 비리 공무원을 색출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지속될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착취, 대량 해고와 노조 파괴 공작 등으로 노동자들은 계속 고통 받게 될 것이다. 삼성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철저한 노동탄압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리 공무원에 대한 처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삼성의 악질적인 노동탄압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삼성 공화국을 해체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찾는 길이다.
2007. 11. 16
인권단체 연석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