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연석회의 성명>

누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전기공 노동자 정해진 열사의 명복을 빌며


잃어버린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또 한명의 노동자가 자신 몸에 불을 붙이고 사망했다. '파업투쟁 정당하다'고 분신한 그의 외침은 사람대접도 못 받고 하루 12시간, 13시간 일해 온 건설노동자가 130여 일, 파업투쟁 끝에 선택한 마지막 길이었다. '노동3권 보장'을 절규하며 분신한 전태일의 1970년이 2007년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한 치도 나아지지 않은 세월이었음을 정해진 열사의 죽음은 증명하고 있다.


돌아가신 정해진 열사는 전봇대·철탑 위에 올라가 고압 전선을 만지는 전기원으로 20여 년 동안 일해 왔었다. 그는 사건이 벌어진 영진전업에서 일을 하다 해고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얼마 전 귀국해 여러 업체에 불려 다니며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정해진 열사는 전국건설노조 인천지부 전기분과 노조원으로 인천지역 23개 전기공사업체들을 상대로 △주 44시간 노동 △단체협약 체결 등을 내걸고 131일째 파업투쟁에 동참하고 있었다.


정해진 열사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채 '유해성을 구속하라' '인천 전기원 파업 정당하다'라고 외쳤다. 유해성은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기공사 설비, 보수 등을 수주 받아 공사하는 인천지역 23개 전기공사 업체들의 대표권을 위임받은 대진건설 사장이었다. 유해성 사장은 단체교섭에 응해야하는 교섭의무를 외면한 채, '단체교섭을 완료하면 하나를 주고 또 하나, 또 하나를 반복해 결국 영업권을 내 놓아야 한다'며 '노동조합이 원하는 대로 단체협약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못 박았던 당사자였다.


그동안 인천지역 전기원 노동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전기공사업체로 전적 당하기도 하고, 사용자들이 임금을 축소 신고하는 방식으로 탈세해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이 줄어들기도 했다. 또한 사용자들은 실제 근로하지 않은 일용 전기원 노동자를 일한 것으로 근로대장을 허위 작성, 세무서에 신고해 소득세를 줄여 탈세 행위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들의 낙찰 단가 경쟁에 밀려 전기원 노동자들은 높은 전봇대 위에서 수만 볼트의 고압 전류로 인해 산업재해의 위험에 시달리면서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강탈당해왔던 것이다.


한편 업체들은 민주노총을 탈퇴하라며 노동자들을 탄압했고, 지난 19일 밤 영진 전업 앞 천막농성장에는 한국노총 조끼를 입은 30여 명의 괴한들이 침입해 천막을 부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발생했었다. 그동안 회사의 회유와 협박으로 투쟁하던 노조원은 140여명에서 2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해진 열사가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은 노동기본권을 무시한 사측이며, 이를 방관한 노동부, 전기공사업체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한국전력 공사였다.


기본적인 노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천막에서 130여일을 농성해야 하고, 결국 자기 스스로 목숨까지 버릴 수 밖에 없는 이 사회의 잔혹함에 대해 도대체 무슨 말이 또 필요할까? 정해진 열사의 죽음에 답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노동자들의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정규악법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고, 건설자본의 비정규직 노동탄압엔 두 눈 감아버리는 정부, 그리고 이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경찰과 사법기관을 동원해 재갈을 물리는 이 권리박탈의 악순환이 당장 사라져야 한다.




2007. 10. 29

인권단체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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