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인권의 무덤인가?
노동권 침해하는 가처분 결정 거부한다!

25일 서울서부지법은 이랜드 사측이 이랜드일반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청구한 영업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전국 32개 매장에서 계산대 등 영업매장은 물론 영업 부대시설에서의 시위, 현수막 부착, 유인물 배포, 피켓 게시 등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노동조합은 1000만원, 조합원은 100만원을 사측에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의 이번 결정은 사법부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파업권을 말살하고 사측의 노조 탄압에 일조한 수치스런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재판부는 가처분 결정의 이유로 “신청인의 소유권·점유권 및 시설관리권능에 대한 침해”를 들며 “방법면에서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를 넘는 것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랜드 노동자들에게 생산 현장이라 할 수 있는 매장에서 쟁의행위의 하나로 벌인 평화적인 점거가 왜 ‘위법’으로 단죄받는단 말인가? 파업은 인사권과 경영권을 가진 사측에 맞서 노동자들이 노동을 중단함으로써 사측에 재산상의 손해를 입히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다. 헌법이 파업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것은 사측이 입는 재산상의 손실보다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의의 마지막 보루’를 자임하는 사법부는 자본의 영업의 자유를 노동기본권보다 우위에 두는 반인권적 결정을 감행한 것이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교섭 요구와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 찬반투표와 파업돌입 선언까지 다 거친 합법 파업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거듭 거절하며 수백명을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해고했다. 또한 사측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악법의 차별시정제도를 회피하기 위해 ‘직무급제’를 도입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영속화시키려 했다. 게다가 사측은 용역경비를 고용해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폭행했고, 파업 중에도 영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서 노동자들이 선택한 매장 점거는 생산의 중단이라는 파업권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한 쟁의행위의 하나일 뿐, 국가가 형벌권을 멋대로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매장 점거를 불법으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매장 주변에서 현수막이나 피켓 게시, 유인물을 배포하는 행위마저 금지했다. 그리고 이를 한 번이라도 위반하면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급보다 많은 돈을 회사에 물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파업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동료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는 행위마저 금지한 것이다. 또한 지난 20일 경찰에 의해 매장에서 끌려나온 노동자들이 사측에 대해 최소한의 항의마저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에 비해 사측은 14개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 노동자들의 주장을 왜곡하고 자신의 입장을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노동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발을 묶은 이번 결정은 사법부가 노골적으로 사측을 편들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애초 ‘가처분’은 ‘급박한 사유’로 큰 손해가 발생할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예외적인 조치이지만, 그동안 자본은 평시에도 가처분을 악용해왔고 법원은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을 들었다. 2005년 신세계이마트, 2006년 철도공사 등도 법원으로부터 가처분 결정을 받아내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들거나 유인물을 배포하는 행위조차 금지했다. 이처럼 가처분은 손배·가압류와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대표적인 통제수단으로 지탄받아 왔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가처분 결정을 거듭 되풀이하는 사법부에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은 인권의 무덤인가?”

법은 정의를 지탱할 때만 그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다. 사법부가 법률에 따른 판결을 할 수 있는 권력을 위임 받았다고 자임하더라도 정의를 훼손하는 판결까지 감행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정의를 지탱하기는커녕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짓밟는 권력의 행사를 우리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인권단체들은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권을 침해하는 가처분 결정에 맞서 일그러진 노동기본권을 바로세우기 위해 강력하게 행동할 것임을 선언한다.


2007년 7월 27일

인권단체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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