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중단 없는 투쟁을!
- 87년 6월 항쟁 20주년에 즈음한 인권단체연석회의 논평-




오늘 우리에게 87년 6월 항쟁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한편으로 그것은 당시 거리를 메웠던 수백만 시민들의 외침이었던 '호헌철폐독재타도' 구호로 다가온다. 이 말을 통해 민중은 독재정권이 허락지 않았던 사상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와 같은 가치를 주장했고, 그것은 결국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쟁취하기 위한 거대한 항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87년 6월 항쟁은, 그것이 개방한 공간속에서 분출한 노동자대투쟁의 저 유명한 외침,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는 구호로 다가온다. 이것은 정확히 6월 항쟁이 제기한 민주주의의 요체이자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으로서 생존권노동권과 같은 사회적 권리, 인권에 대한 주장이다. 87년 6월 항쟁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역사에 새겨 넣었다.

    

그로부터 20년, 87년 민중항쟁을 통해 분출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계는 어디쯤 도달해있는가? 87년 민중항쟁을 과거의 찬란한 역사로 기억하고 기념만 하기에는,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암담하다. 87년 민중항쟁이 가르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와 현실이 바야흐로 최대위기상황에 봉착해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기억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민주화운동의 적자임을 자처하는 노무현 정부아래에서 지난 박정희 독재정권이후 처음으로 한국군의 해외파병이 감행되었다. 미국과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된 평택전쟁기지건설과정에서는, 80년 광주이래 처음으로 군부대까지 투입되면서 범국가적인 체계적인 국가폭력이 자행되었다. 정부가 골몰하고 있는 한미 FTA에 따라 얼마나 많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이 벼량 끝으로 떨어지게 될지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른바 '87년 체제'가 신장시켰다고 평가되던 정치적 자유도 심각한 후퇴의 수순을 밟고 있다. 여전히 건재한 반민주악법 국가보안법에 따라 구속자의 수가 증가할 조짐이 보이고 있고, 통신비밀보호법 제정과 맞물려 그 활동무대가 온라인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투쟁에 대해서 어김없이 가해지는 원천봉쇄와 살인적 경찰폭력 앞에서 집회시위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권리마저도 회수당하고 있다. 계급사법의 혁파를 위한 사법개혁이라는 국민적 과제도 정치권의 대선놀음에 껍데기만 남아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맞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최대위기 상황은 우선 87년 민중 항쟁의 한계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인한다.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한국사회의 역사에 각인했지만, 군부독재를 끝장내지도 민주화를 향한 심화된 경로를 열어재끼지도 못했다. 민중의 진출에 놀란 자유주의세력과 일부 군부독재세력은 6.29선언과 대통령선거를 통해 군부독재의 시효를 연장시켰고, 89년 공안정국을 배경으로 탄생한 보수대연합을 통해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김영삼정부의 세계화 정책을 거쳐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철저한 부정의 역사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가 공격적인 구조조정과 금융개방등으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기반을 마련했다면, 노무현 정부는 노동법개악, FTA등을 통해 이를 완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87년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그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부정의 역사에 저항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은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여러 정치사회적 권리의 회수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민중의 투쟁 속에서만 한발씩 접근할 수 있다. 특히 6월말 한미 정상이 조인할 예정인 FTA와 7월부터 시행될 비정규악법은 자본의 소유권을 위해 민중의 인권과 생존권을 파괴하고, 또 공동체의 당연한 구성원리인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비상한 대응이 요청된다. 87년 민중항쟁 20주년. 그것은 기념과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중단 없는 여정을 재개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20년 전 그날과 똑같이, 거리곳곳에서 빼앗긴 우리의 권리를 위해 너와 내가 함께 손잡을 때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6월 10일




인권단체연석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