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호적법 아류 수준에 머문 새로운 신분증명제도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입장
지난 4월 26일 국회 법사위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킴으로써 2005년 3월 호주제 폐지 이후 2년여 만에 호적제도를 대신할 새로운 신분증명제도 대안을 마련했다. 이 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2007년 12월 31일까지 유보되었던 호주제 폐지가 비로소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번 대체입법은 호주제 폐지로 가부장적 가족 중심의 사회 질서가 새롭게 변화되길 염원했던 국민들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근 한 세기 동안 답보되었던 신분증명제도의 전환을 꾀하는 역사적인 과업이라는 데 비해 한계가 크다.
여전히 국민의 편의와 인권 보다 신분증명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행정편의주의가 우선하고 있으며, 특히 법률 명칭부터 신분증명제도 전반을 ‘가족관계의 등록’이라는 이름 하에 설계했다는 점은 모든 국민의 신분관계를 호주-가문을 중심으로 관리하였던 호적제도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2004년부터 성평등과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 해소, 정보인권 보호라는 원칙 하에 목적별 신분증명제도를 만들어내고 입법화를 위해 노력해 왔던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번 법률안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첫째, 신분증명제도를‘가족관계의 등록’이라는 시각으로 개편하는 것은 법률 내용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국회에 상정되었던 3개의 호적법 대체법안은 모두 개인별 1인1적을 신분증명제도 편제의 원칙으로 하였고, 이번 법률안 역시 ‘국민 개개인별로 국적 및 가족관계사항이 기록·공시’되는 개인별 신분증명제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호주제와 호적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전체의 신분사항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게 되어 있어, 과도한 개인정보가 공시되는 문제 뿐 아니라 가족관계를 통해 개인의 신분을 판단하고 다양한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잘못된 관행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법률안은 개인별 신분증명제도라는 기본 원칙이 무색하게 법률 명칭부터 신분등록부 명칭까지 “가족관계”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호적법의 아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둘째, 본적을 그대로 계승한‘등록준거지’는 호주제와 본적제도의 폐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행 호적법 상 본적은 실제 개인의 거주지나 가구 구성과 일치하지 않는 무의미한 기준자로, 호주제와 함께 혈연·지연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낡은 관행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신분등록·관리·증명이 개인별로 이루어지는 이번 법률안에서 본적은 더더욱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제도이다.
그러나 이번 법률안은 본적을 대신하는 ‘등록기준지’를 도입하여 이를 편제 기준으로 정하고 있어 사실상 현행 호적제도와 똑같은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말로만 개인별 1인1적제를 표방할 뿐 기존의 편제 방식을 그대로 본뜨고 있는 셈이다.
셋째, 증명서에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 등 과도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이번 법률안에는 증명하려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증명서를 발급하고, 발급 신청인을 제한함으로써 민감한 개인정보 공개를 최소화하려는 취지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증명서에는 필수사항으로 등록기준지, 본인 및 가족 모두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증명서의 공시 기능을 충족시키려는 의도 이상의 불필요한 요건으로 과도한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두고 있다.
이 외에도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이 강력히 주장했던 ‘현재의 신분관계 증명서과 신분 변동사항 증명서의 분리’는 끝내 포함되지 않아 민감한 개인 신분 변동사항이 굳이 증명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민의 인권 보장에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있는 이번 법률안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법률안은 호적법 대체법안으로 발의된 3개 법안(노회찬 의원안, 이경숙 의원안, 정부안) 심사를 통해 마련된 법사위의 대안으로, 신분증명서를 기본증명·가족관계증명·혼인증명 등 목적별로 분리한 점, 원칙적으로 증명서 교부 대상을 본인과 배우자·직계혈족 등으로 명확히 한 점, 신분 변동사항의 신고를 민원인의 편의에 맞게 개선한 점 등은 현행 호적법에 비해 진일보한 부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후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은 미흡한 법률 내용의 개선, 대법원 규칙으로 보다 구체화될 제도 설계에 대한 모니터링과 의견 개진을 통해 미완의 개혁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호적사무의 관장기관인 대법원은 2008년 1월, 새 신분증명제도의 차질없는 시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호주제 폐지와 호적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시민사회단체와 각 정당의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할 것을 당부한다.
2007년 4월 27일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
<51개 참여단체 : 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광주인권운동센터·구속노동자후원회·다산인권센터·대항지구화행동·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노동당·민주노총 여성위원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빨간눈사람 쇼킹패밀리 제작팀·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아시아평화인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언니네트워크·에이즈인권모임나누리+·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울산인권운동연대·원불교인권위원회·이주노동자인권연대·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여성공감·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지문날인반대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평화를여는가톨릭청년·평화인권연대·한국교회인권센터·한국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민우회·한국DPI(한국장애인연맹)·함께하는 시민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