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집회시위 자유 제한하는 복면금지개악안 철회하라
경찰과 국회는 마스크 착용 등 신분 확인을 어렵게 하는 기물 소지를 금지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1987년 민중항쟁 20주년이 되는 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개정안을 발의한 경찰과 국회의원 모두 집회 시위가 범죄라는 인식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러한 개악 안을 제출 할 수 있는가. 어찌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복장까지 통제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인가.
개악 안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개악 안은 ‘신분확인이 어렵도록 위장하거나 신분확인을 방해하는 기물을 소지하여 참가하거나 참가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마스크는 물론이고 손수건, 모자, 선글라스, 목도리, 피켓 등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소지하고만’ 있어도 경찰은 그 사람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것이다. 개악 안은 헌법 21조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 즉 집회의 장소, 시점, 방식, 내용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경찰과 국회는 집회 시위의 자유가 필요악이 아니라 국가가 최대한 보장해야할 의무를 지니는 불가침의 인권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이것은 자의적이고 모호한 규정에 의해 개인 소지품에 대한 개입과 통제를 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이기도 하다.
경찰과 국회는 ‘신분확인이 어렵도록 위장’하는 것의 범위가 어디인지 밝힐 수 있는가. 황사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목도리를 두르는 것, 침묵시위를 위해 X자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는 것은 신분 위장을 위한 것인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는 것은 어떤가. 집회 시위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에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여름에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위장인가. 성매매 여성이나 동성애자들처럼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집회 시위를 하려면 경찰과 언론의 카메라 앞에 맨얼굴을 드러내야 하는가.
경찰은 이미 자신들의 발표에 의해 2006년 7,758건의 집회 중 폭력시위로 규정된 시위는 38회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폭력시위 시비가 점점 어려워지자 불법 시위가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허가된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를 겹겹이 포위하고 수 십대의 채증 카메라를 동원해 시위대를 감시하는 자신들의 불법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심지어 폭력 시비와는 무관한 기자 회견이나 1인 시위까지도 방패를 휘두르고 사진 채증을 감행하고 있다. 전용철 농민, 홍덕표 농민, 하중근 노동자 등 경찰폭력에 의해 살해된 이들의 책임자 처벌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진압경찰에게 부대와 개인 식별을 요구하는 인권단체의 요청에도 묵묵부답이다.
지금과 같은 집시법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시비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더욱 문제이다. 이미 집시법은 별다른 위법 행위가 없다 하더라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할 수 있으며, 미신고 집회 시위에 대하여는 경찰서장이 즉각 해산을 명(제18조) 할 수 있고, 소위 ‘폭력집회’에 대해 잔여 집회 시위를 금지(제8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위헌적 법률이다. 또한 2003년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절차조차 없는 상태에서 경찰청의 의견제시 형태로 개악 된 집시법은 도시의 주요도로 에서의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등 집회 시위의 자유 자체를 포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의 자유를 허가제로 운영하고 행정편의적인 절차에 의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집시법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역행하고 있음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반인권적이고 위헌적인 복면 금지 집시법 개악 안을 반대함과 동시에 이번 기회에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집시법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한다. 국회와 경찰은 복면 금지 집시법 개악안과 같은 상식을 벗어난 법안을 통해 우리사회의 인권을 퇴보시키는 만행을 당장 중단하라.
2007년 1월 4일
인권단체연석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