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 위에 군림하는 끈 풀린 공권력, 경찰의 '오늘'을 개탄한다!

- 61주년 경찰의 날에 즈음하여 -




경찰은 작년 10월 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인권경찰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그곳에서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의 영상을 틀어놓고 앞으론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 경찰은 농민 시위를 잔인하게 폭력 진압하였고 끝내 전용철, 홍덕표씨가 사망하면서 이 선언은 요란한 빈수레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바 있다.




나이 든 농민을 둘이나 살해한 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경찰의 총수가 물러났으나, 뒤이어 취임한 이택순 경찰청장은 살인적인 경찰폭력에 대한 반성은 커녕 취임사를 통해 더욱 강력한 집회/시위 통제 의지를 드러내었다. 살인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는 1년 가까이 오리무중이고 현장 진압책임자 이종우가 강원 경찰청 차장으로 승진 발령되는 가운데, 집회 현장에서 살인적인 경찰 폭력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포항에서는 자치단체, 검찰, 지역 언론 등과 함께 포스코에 유착하여 건설 노동자 파업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나섰고, 경찰 병력이 건설노동자들의 평화적인 집회에 방패를 치켜들고 난입하여 또다시 건설노동자 하중근 씨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어 며칠간 벌어진 충돌 사태에서 경찰은 항의하던 시민들을 폭행하고 임산부 지현숙씨를 유산케 하는 등,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는 통제 불능의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하중근 씨 사망 원인을 왜곡하여 발표하고, 유산한 지현숙씨에게는 돈 봉투와 협박으로 입을 막으려 하는 등 전용철/홍덕표 씨 살해사건 때처럼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 온 몸에 타박상을 입은 채 두개골에 충격을 받아 사망한 하중근 씨가 혼자 넘어져서 사망한 것이라는 자칭 "인권"경찰의 조사결과는, 박종철 열사를 탁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파시스트 경찰의 날조된 조사결과를 빼닮았다.




경찰의 인권침해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평택 팽성읍은 불법적이고 월권적인 경찰력 행사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3월과 4월에는 국방부의 불법적인 농지 훼손에 평화적으로 저항한 인권활동가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더니, 급기야 5월에는 야만적인 대추분교 철거에 저항하는 수백 명의 시민과 학생들을 상대로 1만 명의 훈련된 경찰병력을 투입하여 잔인하게 유혈진압하기에 이르렀다. "평화야 걷자" 행진단에게 가해진 지역 상인들의 쇠파이프 야간 테러에는 무력하게 대응하면서, 평택경찰서 앞에서 평화적으로 항의집회를 가진 뒤 자진해산하는 행진단에게는 거침없는 폭력으로 대응하였다. 여성이 다수를 이룬 행진단을 연행하면서 온갖 성폭력이 가해진 것은 물론이고, 신분증을 소지하고 보호자가 동행하여 신분이 확실한 미성년자가, 양심에 따라 지문 날인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팔을 꺾어 누른 채 강제로 지문을 채취하려 들어 자해에 이르게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대추리와 도두리로 가는 길목에는 지금도 24시간 경찰 병력이 상주하며 불법 검문과 통행제한으로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있다.




FTA 반대 집회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 역시 다를 바 없다. 헌법에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못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평화적인 FTA 반대 집회에 금지통고를 남발해왔다. 이번 제주에서 열리는 FTA 반대 집회 역시 부당하게 금지통고 받은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경찰은 물리력을 앞세워 파업권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수많은 충돌을 낳았지만, 그 책임을 오히려 노동자와 시위대에게 떠넘기고 있다. 경찰청이 주도하고 있는 기만적인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는, 비현실적인 소음 규제와 주요 도로 행진 금지 조항 등, 사실상 집회금지법이라 비판받아온 현행 집시법의 독소 조항들을 엄격히 적용하고, 경찰의 요주의 관리 목록에 오른 사람이나 단체의 집회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조치를 활용하는 등 집회/시위의 자유를 더욱 제약하는 조치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끈 풀린 공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라 평가할 만 했던 진압실명제는 전의경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핑계로 철회되었다. 그러나 전의경 대원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상급자의 구타와 가혹행위,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 강도를 가진 사실상의 강제 노역 근무, 상급자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면서 침해되는 양심의 자유 등 정작 전의경의 인권을 가장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당사자는 다름 아닌 경찰 조직 아니던가. 민중의 자식들을 지배계급의 명령에 따라 민중의 인권을 짓밟는 기계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전의경의 인권을 유린해온 것이 소위 "인권"경찰의 자화상이다.




경찰의 인권 침해는 종류도 다양하다.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영화제 내용을 검열하여 당초 허가했던 장소 사용을 불허하기도 했다. 공안 경찰이 영장도 없이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해가며 금융기관으로부터 인권 단체 활동가의 개인 정보를 얻어가는 등, 사실상의 사찰 활동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폐지되었지만 경찰이 운영하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대공분실에서 어떤 조작 사건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지배 권력에 충실한 종으로서 가히 반인권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경찰 조직이, 수사권 조정 등 조직적 이해관계를 위해 인권을 표방하는 것은 표리부동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경찰은 자본과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중근 씨 사망 집회 진압 책임자를 사법처리함과 동시에 포스코의 불법 노동 행위를 조사하고, 평택 팽성읍 주민들을 탄압하는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를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위헌적이고 인권 침해가 가득한 전의경 제도와 상습 폭력 집단 경찰기동대를 해체하고, 사람들이 정당한 생존권 요구를 위해 거리로 나오는 것을 안전하게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 인권 경찰이라 자화자찬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먼저 그렇게 불러줄 것이다. 제 61주년 경찰의 날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06.10.21  

인권단체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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