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지문강제채취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을 비판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26일 주민등록법시행령 제33조 제2항에 의한 별지
제30호 서식 중 열 손가락의 회전지문과 평면지문을 날인하도록 한 부분,
그리고 경찰청장이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에 날인되어 있는 지문정보를
보관·전산화하고 이를 범죄수사 목적에 이용하는 행위에 대하여 각각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17세 이상의 국민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면서 열 손가락의 지문을 강제채취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채취된
지문정보를 경찰청이 보관하면서 범죄수사에 이용하는 행위가 합헌이라고 본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개인의 지문정보와 그 강제채취는 어떠한 법적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사건 결정에
앞서서, 개인의 지문정보의 법적 의미에 관한 이해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었다.
첫째, 개인의 지문정보는 헌법에 의해서 보장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대상이다. 이는 개인의 신체정보로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개인정보
중 가장 민감한 정보이다. 가장 민감한 정보라는 것은, 그에 대한 침해시 그
피해가 상당하다는 것을 뜻하고, 이 때문에 국가권력이 개인의 지문정보를
채취하고자 할 때에는 법치국가 원칙이 요구하는 절차·형식·내용을 엄격하게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국가권력이 개인의 지문정보를 강제채취하는 행위는 개인의
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행위이므로, 법치국가 원칙에 따라 당연히 법률의
근거가 필요하며, 그 법률은 절차적·내용적 정당성을 갖춘 법률이어야 한다.
셋째, 일정한 국가기관이 일정한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법률에 근거하여
수집한 개인의 지문정보를 다른 국가기관이 다른 행정목적을 위하여 이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또 다른 법률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그 법률에는 그러한
지문정보를 연결해서 보관하고 이용하는 목적이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
넷째,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권력이 모든 국민을 상대로 지문정보를
강제채취하는 행위가 헌법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가이다. 주민등록증 발급의
입법목적은 주민의 거주관계 파악 및 행정사무의 간이·적정한 처리이다. 또한
경찰이 열 손가락 지문 등이 포함되어 있는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를 고속의
대용량컴퓨터에 이미지 형태로 입력하여 이용하는 것은 주로 범죄수사 목적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무서운 법적 가설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범죄행위를 저지를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설이다. 즉,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지문정보 그리고 그것을 국가권력이 강제채취·이용·전달하는 행위의
법적 의미와 문제점에 대한 이상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를 검토하기로 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문강제채취의 법적 근거를 주민등록법 제17조의8 제5항과
주민등록법시행령 제33조 제2항에 의한 별지 제30호 서식이라고 보았다.
헌법재판소가 지문강제채취의 법률적 근거로 삼고 있는 주민등록법 제17조의8
제5항은 주민등록증 수록사항으로 “지문”을 규정하고 있고, 주민등록법시행령
제33조 제2항 별지 제30호 서식에는 열 손가락 지문을 찍는 난이 있다.
주민등록법과 같은법 시행령의 관계를 모법과 위임입법의 관계로 본다면,
최소한 모법인 주민등록법에서 시행령에 위임할 내용의 대강이라도 알 수
있도록 규정해야만 위임입법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지문정보와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의 경우에는 위임입법의 원칙 준수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모법인 주민등록법 그 어디를 보아도 지문과 관련하여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임할 것인지에 관한 예측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위임입법의 원칙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즉,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다.
주민의 거주관계 파악 및 행정사무의 적정·간이한 처리라는 행정목적을 위하여
수집된 개인의 지문정보를 경찰이 넘겨받아 전산화하고 이를 또 다른 목적인
범죄수사 목적에 이용하는 행위가 합헌적인가? 헌법재판소는 그 법률적 근거로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제10조 제2항 제6호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
법률은 공공기관이 적법하게 수집한 개인정보를 보관·이용하고 개인정보에
대한 침해행위를 방지·처벌하기 위한 법률이다. 그러한 개인정보를 다른
국가기관이 또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고자 할 때에는 법치국가 원칙에 따라 그
이용목적·절차·권리구제·제재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법률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은 주민의
거주관계 파악 등을 위하여 수집된 개인정보를 경찰이 수사목적을 이유로
넘겨받아 보관·전산화할 수 있는 근거법률이 아니다. 경찰이 그러한 목적으로
지문정보를 넘겨받?행위 자체가 바로 기본권 제한행위이고, 여기에는 별개의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17세 이상 모든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정보를 수집하고
경찰청장이 이를 보관·전산화하여 범죄수사목적 등에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정보주체가 현실적으로 입게 되는 불이익은 그다지 심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행위, 법률적 근거가 명확하지도 않은 열 손가락 지문 강제채취 행위,
일반행정목적이 아니라 경찰목적을 위해 직접적인 법률적 근거도 없이
지문정보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전달받아 보관·전산화하는 행위 등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사소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설시한 바 있듯이 무가치한(사소한) 정보란 없다. 헌법재판소
스스로도 이러한 판단의 문제점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화사회로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개인정보보호의 필요성이 날로 증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경찰청장이 지문정보를 보관·전산화하고 이를
범죄수사목적 등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보관·전산화·이용의 주체, 목적,
대상 및 범위 등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법률적 근거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라는 결정문의 일부
내용이 그것이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열 손가락 지문
강제채취행위라는 공권력의 작용에 대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내세워 만연히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려 버림으로써 지문정보의 기본권적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절하시켜 버렸다. 요컨대, 헌법재판소는 개인정보가
국가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통제되는 감시사회를 정당화한 것이며, 이로써
기본권수호기관의 지위에서 기본권침해기관의 지위로 그 스스로의 위상을
격하시켜 버렸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2005. 5. 31
민주주의법학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