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경찰의 대변인인가?
- 법리적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 못하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분노한다 -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와 경찰의 지문정보 임의사용에 대하여 5월 26일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이념과 법률의 정의에 근거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가정을 근거로 합헌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과연 헌정질서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9인의 재판관 중 3인의 반대의견을 제외한 다수 의견이 현행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와 지문정보를 이용한 임의적인 경찰수사관행을 합헌으로
해석했다. 3인의 반대의견은 가장 기본적인 법률해석의 기준에 근거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다수 의견은 면밀한 법률적 해석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견해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가 실망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법률유보의 원칙, 과잉제한금지원칙 등 법학과 1학년
학생들조차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는 법해석의 기준들이 모두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원확인기능의 효율적인 수행을 강조하면서도 왜, 어떤 목적으로
신원확인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다수의견은 눈을 감고 있다. 모든 국민의
지문정보가 없으면 신원확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지문정보의 유용성에 대해 유별난 강조를 하면서도 그
유용성이 왜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경국대전을 들먹이면서 관습헌법이라는 유행어를 만들 정도로 헌법재판관들이
박학다식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박학다식이 지나쳐 경찰의 지문정보
임의사용의 근거를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서 찾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이 지문정보의 임의사용을 보장하는
법률이라면 법률의 명칭 자체를 ‘공공기관의개인정보이용에관한법률’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 다수의견은 법률제정의 취지와 목적조차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그동안 경찰이 주장했던 바와
대동소이함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오늘의 다수의견은 경찰이 주장하는
바를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질서유지의 최후
보루이자 최고 심급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경찰의 대변인 역할에 만족하는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실망을 넘어 안쓰러움까지 느끼게 된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가 반인권적이며 일상적
파시즘을 강요하는 제도임을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추상적 가정에 근거하여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를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우리는 이 반인권적인
군사정권의 유산을 철폐하기 위해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2005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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