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11일(일) 맑은 날


순례 길을 떠난 지 어느새 한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 오월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300여 킬로미터 가운데 240여 킬로미터를 지나왔고, 이제는 60여킬로미터만 남아있습니다. 서울로 다가갈수록 점점 차들이 많아지는데, 오늘 같은 일요일 오후의 국도 1호선은 서울로 가려는 차들로 더욱 붐비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순례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오늘 아침, 지난밤에 묵었던 송현성당을 출발하자마자 '쌔엑-' 하는 낯선 굉음이 귓전을 울립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두리번거리가 하늘을 보았더니 종류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여객기도 아니고, 전투기도 아닌 이상한 비행기를 보면서 공군 기지로 잘 알려진 오산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휴일을 맞아 해창갯벌에서 출발한 날 이후 최대의 인원인 삼백여명이 순례에 참여하셨습니다. 길가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해주시는 분들도 부쩍 많아졌고, 순례단을 응원해 주시거나 직접 순례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순례단 뒤에는 차들이 한참을 늘어서 있지만 교통체증 때문에 항의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고 지나가는 차량에서도 전단지를 달라는 분들이 많아 시민들의 호응이 좋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삼보일배 순례가 상당히 알려져있나 봅니다.

이른 아침부터 인터넷상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사회정의와 생태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시민도서관 일꾼 여섯 분이 서울과 부산·청주에서 오셨고, 평택성폭력상담소 김정숙 소장님, 대구환경연합 공정옥 차장님과 윤기웅·송경민 간사님, 함께하는시민행동 하승창 사무처장님, 송탄성당 교우 여러분, 한국CLC(그리스도 생활공동체) 수녀님과 회원 오십여분, 용인 대각사 주지 석정호 스님과 신도 백여분, 강원도 정선군 고한성당 이우갑 신부님과 학생 등 이십여분, 참여연대 손혁재 운영위원장님과 박영선 사무처장님·장유식 협동사무처장님과 활동가·회원 십여분, 전주 서신동 본당 교우 십여분, 광주 선덕사 행법스님과 평화실천광주전남불교연대 회원 여섯분, 환경연합 최열 공동대표님과 가족, 과천환경연합 송학선 의장님 내외분, 부안성당 교우 사십여분, 천주교여성공동체 김선실 회장님과 회원·가족 열네분 외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습니다.

마침 오늘이 순례단 기수이신 신권 선생님의 결혼기념일이기 때문에 어제 저녁, 부안에서 온가족이 면회와서 선생님은 하룻밤 외박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순례에 참여한 일곱 살 난 딸 신해는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싶던 아빠를 보니 순례에 참여해도 다리가 아프지 않고 재미있다고 합니다.

참여연대 박영선 사무처장님은 "삼보일배가 이럴 줄은 몰랐다. 하나의 이벤트성 행사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고행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작에 와서 동참했어야 하는데 늦게 와서 죄송하고, 이렇게 와서 고행하시는 것을 곁눈질로라도 보니 새만금갯벌 살리기 투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것은 그냥 싸움이 아니라 성스러운 싸움이다. 옆에서 보는 것이 더 힘들고 차라리 직접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하시며, 참여연대도 새만금갯벌 살리기 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달쯤 전에도 오셨던 환경연합 회원모임 '물사랑' 장용창 회원님은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교육목적으로 오셨다는데, "자나깨나 성직자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갈수록 공기도 나빠지고 교통도 혼잡해지니 더 걱정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양심이 있으면 내려와야 한다"며, 절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죄송해서 모자도 못쓰겠다고 따사로운 봄볕에 맨 얼굴로 순례에 참여하셨습니다.

대각사 청년회 김은정 회원님은 "며칠 전,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삼보일배'에 관한 다큐멘터리 방송을 하기에 보았다. 삼보일배는 불교인이라면 다 아는 말인데, TV를 보면서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그 취지를 잘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신도들이 다 나왔다. 오전에는 환경연합의 교수님으로부터 새만금갯벌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나왔다.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각 종교가 함께 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참여하신 느낌을 말씀하셨습니다.

오후 늦게에는 길가 공터에 천막 치고 쉬며, 저녁을 먹고 있는데, 문화관광부 이창동 장관님께서 오셨습니다. 저녁을 먹고나서 순례단과 한동안 말씀을 나누신 장관님은 "행정 가운데 불합리한 면도 많지만, 예산을 많이 투입하여 시작한 일을 원점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얼마나 되돌릴 수 있을지 좀더 공부해보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미국에서 돌아오는대로 국무회의에서 이야기하겠다. 농림부·환경부·문화관광부 장관이 이렇게 차례로 오는 것을 보더라도 정부의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보일배는 대단히 평화적인 방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새만금 사업은 정치적인 과정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서 또 다른 정치적 과정과 절차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새만금신구상기획단이다. 그 절차를 밟는 동안 지금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을 유지해주기 바라며, 여러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시키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환경연합 시민환경정보센터에서 일하시는 조혜진 기자님께서 사진을 찍어 제 일을 많이 덜어주셨습니다.

오늘 아침은 평택 송현성당, 점심은 갈곶동성당, 저녁은 오산성당에서 각각 준비해주셨습니다. 전북대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최재희님은 순례단을 위해 새벽 2시까지 구우셨다는 과자를 한 상자 가지고 오셨고, 경기78X1694 승합차 아저씨께서는 직접 재배하신 배를 두 상자 주셨습니다.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순례가 한 달을 넘기면서 참여하시는 분들도 늘었는데, 삼보일배 순례에 참여하시려면 자신이 마실 물 정도는 준비해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온 길 : 경기도 평택시 송현동 - 진위면 (5.5km /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240.3km)

※앞으로 갈 길 :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 오산시(5월 12일) - 수원시(5월 15일) - 의왕시(5월 19일) - 안양시(20일) - 과천시(5월 22일) - 서울 사당동(5월 23일) - 여의도(5월 25일) - 광화문(5월 31일)


<일정은 날씨를 비롯한 여러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 순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