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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문

전북도교육청은 학교 내 성차별 및 성폭력 근절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언론은 피해학생에 대한 2차 가해를 유발하는 기사작성을 중단하라!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 "애 낳는 게 애국이다" 교사가 이런 말들을 수업시간에 했다면 법적 처벌을 받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2018년 시작된 ‘스쿨 미투’는 이와 같은 성차별도 공론화해 학교 내 성차별·성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학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은 단순히 성폭력 행위를 한 개인에 대한 처벌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스쿨 미투’는 학교 내 비인권적, 성차별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한 성평등하고, 안전한 교육환경을 요구하는 것이다.

스쿨 미투는 위계 속에서 일어난 폭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위계 때문에 피해당사자인 학생은 끊임없이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고, 누군가의 뜻에 맞는 말을 해 줄 증인으로서만 말할 자격이 주어지는 기존의 성폭력 해결방식에 분노하며, 교사-학생 간 성폭력의 해결책은 ‘성평등과 학생인권’임을 청소년의 목소리로 직접 SNS와 거리에서 외친 것이다.

그러나 언론들은 심각한 사례만을 중심으로 선정적 기사들을 쏟아내며, 성차별과 같은 '경미하다'고 보이는 사안들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 '경미한 것들'에 분노하고 공론화하는 그들에게는 '지나치게 예민한', '치기 어린', '감정적 반응'이란 비난이 돌아왔다. 교육에 매진하는 교사들에게 불안과 위협이 되고 있다는 푸념이었다. 고발자 중 일부는 학교, 가정, 지역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또는 자발적으로 생각을 바꿔,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거나 가해자를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거짓말쟁이로 불리거나 무고, 명예훼손 등의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겁박에 시달렸다. 그 후 다수의 학생들이 숨었고, 다시는 증언하지 않겠다고 하고, 조용히 공부하다가 졸업하겠다며 잊히기를 원했다.

전북에서는 스쿨미투 이전의 성폭력 고발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부안OO중학교는 교육청 산하 기관인 학생인권교육센터를 통한 경우였다. 당시 학생들은 교육청의 절차에 따라 해결하려 했지만 지역사회와 언론의 몰이해로 2차 가해를 했고, 학생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지지와 응원 대신, 감당하기 어려운 주목과 비난 여론에 휩쓸렸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학생들 역시 이러한 여론에 위축되기 쉬웠을 것이다. 이런 스쿨미투 이전의 용기 있는 행동이 오히려 스쿨미투가 가져올 변화의 바람을 맞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이에 우리는 지금이라도 전라북도의 모든 학교를 더 성평등하고 학생인권친화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려 하며, 당시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잘못되었고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를 낱낱이 따지고자 한다.

먼저, 언론에 책임을 묻는다.

이 사건을 ‘경미’한 사건으로 보고 경찰이 내사종결한 것이 법적 의미를 넘어 행정적,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듯 기사를 쓰며, 편견에 기대어 사건의 흐름을 호도했다. 스쿨미투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바와 같이, 학교의 구조를 살피고 개선을 요구하는 방식으로의 보도를 했어야 한다. 교육기관들이 비판 받아야할 지점은 조사를 강행한 것이 아니라, 여론의 흐름에 눈치를 보며 사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함으로써 학생들에 대한 비난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해야 했다.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 질타를 가하고 이를 뿌리 뽑기 위한 학교와 교육청의 노력이 미진함을 비판해야 했다. 그리고 피해학생들의 진술 번복이나 탄원서의 의미를 학교의 특수한 사정에 맞춰 해석하며,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통한 인권침해는 있었지만 교사를 처벌하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것이라는 점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은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초점을 맞추며 학생들의 진술 번복과 탄원서를 부각시켰고 이는 학생에 대한 비난을 부추길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2차 가해다.

교육 당국 역시 책임져야 한다.

사건 초기에 피해학생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 상담조치를 통해 절차를 안내하고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안전하게 진술할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다. 당시 대응의 미흡함을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학생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철저한 분리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효과적인 보호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필요한 피해자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압박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리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학교 내 성폭력은 친족 성폭력의 특성과 비슷한 점이 많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자발적으로 가해자의 선처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피해가 없어서가 아니라 가해자와의 관계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유지’되어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피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애정’과 혼재하기 때문에 이를 명확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특히 지역의 소규모 학교는 좁고 폐쇄적이며 가부장적 인식구조가 지배적이다. 많은 경우, 가해자와의 분리가 이루어진 후에도 지역사회, 선후배, 부모, 부모의 지인 등에 의해 2차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도 더 크다. 이런 특성을 이해했다면 학교와 교육청은 분리조치 및 전문 상담 인력 배치를 통해 지속적으로 피해학생의 보호에 더욱 더 공을 들였어야 했다.

최소한의 분리조치 이상으로 더 적극적인 조치 역시 필요하다.

학생청소년을 당사자로 대우하고, 해결 과정과 이후의 변화에서 그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학생-교사 간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는 진술이나 탄원서를 통해서만 관여할 수 있었고, 보호자를 통해서만 목소리를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러모로 당사자이자 주체로서 사건 처리 과정에 개입하기 어렵다. 심지어 어떤 과정을 통해 사건이 진행되는지 등에 관한 사실조차 보호자를 통해야만 하고, 이는 실질적으로 당사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기 어려운 방식이라 볼 수 있다.

또 그릇된 통념에서 비롯된 비난이 학생들에게 쏟아질 때, 문제를 키우지 않기 위해 언급을 자제한 것에 그쳤다. 이미 2차 가해가 이뤄진 후에야 학교에 교육 등을 실시하며 예방하고자 했다. 지역사회의 피해자 보호 전문 기관을 통해 성 사안에 관한 전문 인력을 파견하여 피해학생들을 직접 돕고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도와야 했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잘 이루어지려면 이러한 과정이 담긴 매뉴얼이 필요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학생과 직접 만나는 상담교사나 학교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사건이 발생할 때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안내하고, 상시적으로 성인지감수성을 갖추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당시의 성인지 감수성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은 단순히 법적 처벌의 수위를 넘지 않는 수준을 지키는 정도를 안내하는 교육이었다. 이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학생인권을 보장하도록 평상 시 교사에 대한 인권교육을 철저히 해야 했다. 교사의 학생 동의 없는 신체접촉이 인권침해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속적 연수를 실시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교육청에서 제공한 자료조차도 ‘적절한 신체접촉을 통한 메시지 전달’을 장려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학생의 동의 없는 ‘가벼운’ 신체접촉을 인권침해라고 인식할 리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아무리 인권구제를 위해 조사하고 징계를 한들 ‘경미한’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학생인권을 강조하는 교육감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통해 교육감 선거에서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들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사실관계마저도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얹으며 이 사태를 더 혼탁하게 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진정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학교인가? 학생이 주인 되는 학교인가? 학생이 안전한 학교인가? 그렇다면 교육감에게 성차별,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좌고우면하지 말고 교육과 인사권을 통해 현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라고 성토해야 할 것이다. 학생인권 보장에 최선을 다하라고. 생각해보라. 다음 선거의 유권자는 누구인가? 지금 학교 현장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을 감내하고 있는 만18세가 될 청소년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나 지인들이다. 그들의 표를 의식하는 것이 선거의 기본이 아닌가?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교육청은 성차별, 성폭력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안 대응 매뉴얼을 학교폭력매뉴얼에서 분리하여 더욱 구체화하라!

2. 교육청 내 성차별, 성폭력 전담팀을 구성하여 예방, 구제, 사후관리까지 담당하게 하라!

3. 성차별, 성폭력 사건 초기에 가피해자 분리조치, 상담, 법률 대리, 절차 안내 등에 조력하도록 학교에 전문 인력을 파견하라!

4. 교사 및 교육청 내 모든 직원들이 성인지 감수성에 맞는 직무수행이 가능하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라!

5. 언론은 인권보도준칙(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을 준수하라!

6. 언론은 성폭력 특성에 대한 몰이해로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을 유발하는 기사 작성과 받아쓰기를 중단하여 2차 가해를 멈춰라!

7. 각종 교육단체들은 학교 내 성차별과 성폭력 근절을 위해 선거 유불리를 떠나 협력하라!

2020년 7월 15일

스쿨미투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