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논평]
노동자의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 ‘업무용 기기’라도, 노동자의 개인정보 보호해야
- 정부는 노동자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보장 위한 적극적 조치 취해야
서울고등법원이 노동자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냈다. 이는 전자 통신 및 전자 기기의 범용화로 인해 개인의 인격권 내지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고조되고, 이를 이용한 사측의 노동 감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자 자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개인정보보호를 사측에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확인한 의미있는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KT는 ‘퇴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든 부서인 업무지원단 소속의 노동자들에게 무선서비스 품질 측정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을 개인 단말기에 설치할 것을 지시하였다. 위 어플의 설치 공지화면에는 업무와 무관한 휴대폰 내 다양한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권한이 표기되어 있었기에, 다수 노동자들이 개인정보 침해를 우려하며 이에 반발하였다. 마지막까지 해당 업무지시를 거부한 한 노동자는 ‘(사규에 정해져 있는) 별도 단말기의 지급’ 혹은 ‘해당 부서 내의 다른 업무로의 이전’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합리적 이유 제시나 설명도 없이 이를 번번이 무시하다가, 당사자가 황창규 대표이사에게 고충 이메일을 보내자 업무지시 불이행 및 조직질서 위반을 사유로 정직 및 전보의 징계 조치를 하였다. 이에 당사자는 사측을 상대로 징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 1심 판결(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17. 4. 4. 선고 2015가합206504 판결)에 이어 올해 6월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18. 6. 26. 선고 2017나2024180 판결)에서도 ‘징계가 무효임을 확인하며, 회사는 이에 따른 임금 손해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 승소 확정된 사건이다.
(관련 KT전국민주동지회 성명서: )
해당 어플은 개인 휴대폰의 △카메라 △현재 위치 △통화 △연락처 △캘린더 일정 △저장소 △문자메시지 △계정정보 등 12개 항목에 접근권한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항목에 따라 수집, 전송권한도 포함). 이는 무선품질을 측정하기 위한 업무의 수행에 필수불가결한 권한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노동자들의 우려가 근거가 없고, 개인의 예민함이나 회사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설치 시 ‘동의’ 여부를 묻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다며 해당 업무지시의 정당함을 주장하였다. 이에 법원은, 비록 해당 어플이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된 것은 아니라고 보았지만, ➀ 해당 어플이 위와 같은 접근권한들을 요구하는 것은 기본권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에 해당한다는 점, ➁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기업의 근로감시활동이 전자장비와 결합, 확대됨에 따라 노동자의 인격권 내지 사생활 침해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 및 어플 이용자들이 본인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 활용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 ➂ 따라서 노동자는 가능한 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 방지를 위하여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보호받아야 할 자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존중해줄 것을 사용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판시하였다. ➃ 결론적으로 이 사건에서 존중되어야 하는 노동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비해 사용자의 업무지시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없으므로, 해당 노동자에 대한 징계는 그 사유가 부존재하여 위법, 무효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법원은 비록 회사의 업무지시에 스마트폰, 어플 등 전자장비가 활용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개인정보 침해 위험이 있을 경우 노동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회사가 충분히 존중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이미 헌법재판소가 기본권이라고 판단[헌법재판소 2005. 5. 26. 선고 99헌마513, 2004헌마190(병합) 결정, 헌법재판소 2009. 10. 29. 선고 2008헌마257 결정 등]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의미를 현재의 노동관계 상황에 구체적으로 부합하도록 해석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법원은 위와 같이 해당 노동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보다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로 ➀ 회사가 ‘개인정보보호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기는 하였으나 형식적인 수준 내지 업무수행을 반복적으로 촉구하는 것에 그쳤다는 점, ➁ 회사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가 이미 좋지 않았음에도 보다 설득력 있거나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등의 조치가 없었던 점, ➂ 해당 노동자가 개인정보 침해의 우려 없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시한 대안들을 회사가 수행하는 것이 전혀 곤란하지도 않았던 점, ➃ 해당 노동자가 황창규 대표이사에게 전송한 이메일도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이 없었던 점 등을 자세하게 거론하였다. 이러한 점들에도 비추어, 결론적으로 노동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하면서까지 해당 업무지시를 이행을 우선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헌법 제10조 제1문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기타 헌법상 여러 기본권들을 이념적 기초로 하는 독자적 기본권으로서 헌법에 명시되지 아니한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CCTV, RFID, 스마트폰, PC 사용기록 등을 통한 노동감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나날이 심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 상황을 고려컨대 국민의 기본권을 우선시한 이번 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는 바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 역시 노동자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더욱 적극적인 조치를 수립, 실행하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2018년 8월 13일
법률원(민주노총,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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