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산업체파견현장실습대책회의, 제주공동대책위원회

정부 ‘현장실습’ 개선안에 대한 논평


‘다른’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도 폐지하라! 


교육부는 12월 1일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는 ‘조기 취업 형태의 고교 현장실습’ 전면 폐지”와 “취업률 성과주의 타파” 계획을 발표했다. ‘전면 폐지’와 ‘타파’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전 발표한 내용에 포장지만 바꿨을 뿐이다. 3개월 학습중심 현장실습과 지금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다음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라 할 수 없다.

학습 중심 현장실습 계획이 전혀 새롭지 않다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폐지한다.’라는 계획은 2003년 ‘고등학교 현장실습 운영 개선 방안’부터 나온 이야기다. “조기 취업 형태를 규제하고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업에 한해 학생을 파견해야 한다.” 이미 조기 취업 형태를 규제한다는 발표를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14년 전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2006년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은 “취업이 예정되어 있고 수업의 2/3 이상 이수한 경우에만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 가능하다.”라고 했다. 취업을 전제로 한 조건을 따지면 11년 전보다 후퇴한 계획이다.

학생이 희생될 때마다 내놓았던 대책은 고이 모셔 둔 채, 수많은 학생의 목숨값으로 진학률과 취업률의 역전에 ‘성공’했다. 그 취업률을 근거로 각종 지원금을 받아 학교 시설을 바꾸고, 교과 실무를 익히는 교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러나 1%라도 더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매년 산업체로 학생을 파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돈이 더 필요하고 취업률 1%가 더 아쉬운 학교는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를 2학년 1학기부터 실시하고 있다. 학교에서 실습할 수 있더라도 산업체로 내보내는 일이 학교의 능력이 됐고, 3학년 2학기 교육의 전부가 됐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만한 계획은 전혀 없는데 다시 산업체로 내보내 3개월간 ‘학습 중심 현장실습’을 하겠다니. 공교육을 책임져야 할 학교에서 사교육 시장에 학생을 맡겨 놓고 공부 잘 시키나 감시만 하겠다는 말인가. 산업체에서 ‘학습 중심 현장실습’하는 학생은 신분이 ‘학생’이 되고, 산업체에서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에 참여하는 학생은 ‘근로자’ 신분이 된단다. 계획대로라면 2학년은 노동자고, 3학년은 학생이다. 이름 붙이는 대로 신분이 정해지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전문대, 대학교 4학년, 각종 자격증 의무 실습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습생 노동착취 실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일이다.

실습은 실습이고, 취업은 취업이지 ‘학습 중심 현장실습’이라고 이름만 바꿔치기한다고 본질을 가릴 수 없다. 2013년 ‘학생안전과 학습중심의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에서도 이렇게 발표했다. “현장실습을 값싼 노동력 제공의 수단이 아니라 일터 기반의 학습으로 전환하기 위해 기업에 ‘현장훈련 매뉴얼’을 제공하고 이를 채택한 기업에 대하여 현장훈련 지원을 확대한다. (’17년까지 1만 개).” 재탕 삼탕에 불과한 대책을 내놓고 여론의 시선을 끄는 화려한 수사만 내세울 게 아니라 신뢰할 만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취업률 성과주의 없애려면 취업 축하 현수막부터 걷어라

‘취업률 중심의 학교평가 및 예산지원 체제를 개선하겠다’라는 의지에 신뢰를 더하려면 교문 앞 현수막부터 걷어야 한다. 매일 등교하며 지나야 하는 교문에는 그럴듯한 기업에 취업한 학생들의 얼굴이 전시되어 펄럭인다. 쉬는 시간마다 오가는 복도 전광판에 취업 학생 이름과 기업을 보여주며 어서 취업하라고 재촉한다. 교무실 칠판에 취업 여부로 학생을 분류하며 교사와 학생에게 각오를 새롭게 다지라고 꾸짖는다. 취업 못 한 학생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교문을 지나야 하나, 그럴듯한 기업에 취업하지 못한 학생은 기죽어 지내야 하나, 교사는 수업이 아니라 취업에만 매달려야 하나. 취업 여부로, 어떤 기업에 취업했느냐 여부로 학생을 갈라 차별하고, 기업에서 버티지 않고 돌아온 학생에게 벌주는 학교를 바꾸지 않는다면 취업률 성과주의는 결코 ‘타파’할 수 없다.

지난 9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 시도교육감에게 “취업과 관련한 홍보물에 특정 학생의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포함되고 있고, 홍보물 게시 행위는 차별적 문화를 조성할 수 있으므로, 전국 시・도 교육감이 홍보물 게시와 관련 각급 학교에 대해 지도·감독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2달여 지난 지금, 학교 앞 현수막은 오히려 더 많이 경쟁하듯 펄럭인다. 교육부, 교육청, 학교는 취업 축하 현수막부터 당장 걷어내고 ‘타파’를 논해야 한다.

전수조사부터 민관이 함께 하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라

제주 현장실습 중 사고가 난 후 각 교육청과 학교에 12월 15일까지 기업체 전수 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교사와 교육청 현장실습 담당자가 조사자가 되고, 방식은 학교에서 기업체를, 교육청에서 학교를 조사한다. 점검 내용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 체결 여부와 산업체의 산업 안전이다. 항목마다 ○✕만 표시하게 되어 있다. 형식적인 서류와 단편적인 조사는 늘 해왔던 방식이다. 말만 그럴듯한 전수 조사 말고, 산업체 특성에 맞게 유해・위험 요소를 점검할 수 있는 전문가, 위법 행위에 대해 조치할 수 있는 행정감독관, 학생의 의견을 잘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인권 전문가, 학부모, 학생 대표 등이 함께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 전공 관련 현장실습의 기준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고, 전공 관련 현장실습이 이뤄지는지, 산업체에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마련되어 있는지, 현장실습만 전담하는 담당자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은 이번 계획안의 실행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실습은 교육과정임을 명확히 하라

실습은 교육과정이다. 그러나 이를 분명히 하는 법적 근거는 여전히 미흡하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에 실습이 교육과정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을 개정해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의무 규정을 선택으로 바꾼다는 계획만 발표했다. 교육부 총론엔 여전히 “다양한 직업적 체험과 현장 적응력 제고 등을 위해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경험하고 적용하는 현장 실습을 교육과정에 포함하여 운영해야 한다.”(교육부 고시 제2015-80호)고 되어 있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의무 조항이 남아 있는 것이다. 초·중등교육법에 실습이 교육과정임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학생의 ‘자율적인 선택’은 허울에 불과하다. 발표한 계획과 현실이 달라 혼란은 자명하다. 해석이 분분한 채 또다시 ‘교육도 노동도 아닌’ 현실에 학생을 내몰 것인가.

어떤 이는 ‘현장실습 제도는 문제없는데 기업이 제대로 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한탄했다. 문제 인식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교육과정 운영 책임이 산업체에만 있다니. 공교육에 대한 책무는 잊은 채 교육부는 더는 산업체의 불법 행위만 탓하지 마라.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의 대안처럼 얘기하지만 ‘다른’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 불과한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와 취업 맞춤반 사업도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대안적인 직업교육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수능을 연기하면서 정부는 이렇게 얘기했다. “59만 명의 학생과 학부모의 불편보다 6천 명의 고통을 생각했다.” 옳은 결정이고, 어떤 정책에든 관통해야 할 관점이다. 매년 직업계고 학생 10만여 명이 현장실습을 하고, 그중 6만여 명은 산업체에 나가 현장실습을 한다. 이번 사건은 고 이oo 님 1명이 죽은 사고가 아니라 10만 명, 6만 명 학생의 안전과 학습권, 그 사람들의 친구, 가족, 지인들의 안녕을 살펴야 하는 사고다. 이번 대책이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니라면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당장 중단하고 ‘폐지’를 논해야 할 것이다.

2017.12.2.


산업체파견현장실습중단과청소년노동인권실현대책회의

현장실습고등학생사망에따른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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