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의 인권조례 시행규칙 제정·시행이 걱정된다.
전라북도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
지난 5월 19일 전라북도는 ‘전라북도 도민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이하에서는 ‘시행규칙’이라 함)을 제정·시행하였다. 이는 2016년 제정된 ‘전라북도 도민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이하에서 ‘전라북도인권조례’라 함.)에서 위임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시행규칙은 전라북도인권센터의 운영에 필요한 상세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행규칙의 제정·시행은 전라북도 도민과 인권단체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전라북도는 시행규칙의 제정 과정에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과 관련하여 취해서는 안 되는 태도를 취했다. 이는 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며, 이러한 태도가 자칫 전라북도에서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게 한다는 점에서 마냥 시행규칙의 제정·시행을 환영할 수만은 없다.
전라북도는 시행규칙 제정에 앞서, 3월 17일 시행규칙(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와 관련하여 특정 종교의 신자들이 시행규칙 제2조(정의) 2의 “차별행위” 정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의제기를 받고 전라북도는 ‘차별행위’ 정의를 수정하거나 삭제하여 이러한 항의에 대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하여, 전북평화와인권연대와 전북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전라북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시행규칙 수정∙삭제 의도에 대해 전라북도인권센터에 항의하였고, 5월 10일 센터장과 면담했다. 센터장은 시행규칙의 일부 조항을 삭제해도 차별행위의 정의가 법률(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되어 있어 보장되는 인권의 의미나 차별의 정의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법률적 검토까지 마쳤다고 답변했다. 또한 특정 종교의 소수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반발이 강해 의견을 수용할 수밖에 없어 시행규칙 제2조 제2항을 삭제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다. 뿐만 아니다. 시행규칙 제정과 시행에 관한 권한을 가진 도지사 면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센터장이 아직 회의를 언제 열지 모른다고 했던 조례 심의위원회가 면담 직후 열려 지난 5월 19일 당초 입법예고된 안을 일부 수정한 시행규칙이 제정·시행된 것이다. 더군다나 센터장 면담 때 언급했던 것보다 더 삭제된 조항이 늘어났다. 이는 전라북도가 특정 종교 세력의 의견에 굴복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시행규칙 원안을 유지하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은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왜 시행규칙의 제정 과정에 관하여 시민단체를 속이는가?
입법학적 또는 법체계적 관점에서 보면, 전라북도 지사가 입법예고했던 시행규칙(안)에 차별행위의 정의를 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었다. 전라북도인권조례가 사용하는 인권이라는 용어가 이미 대한민국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법률이나 국제인권조약 등에서 인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전라북도인권조례 제2조 제1호)고 하고 있고, ‘차별행위’는 평등권 보장의 다른 측면으로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서 매우 상세한 차별금지사유가 적시되면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라북도인권조례에서도 별다른 정의 없이 차별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제13조). 그럼에도 전라북도는 차별행위의 정의를 시행규칙에서 하려 했고, 또 인권센터장이 언급한 바와 같이, 특정 종교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이러한 규정은 인권보장을 위해 반드시 넣어야 하고 이에 대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해서 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시행규칙(안)에 명시하였다고 한다.
이 부분에 우리는 주목한다. 법령의 해석상 시행규칙에 차별행위 정의가 없어도 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법적인 검토를 거쳐 마련한 시행규칙(안)을 특정 종교의 반발을 고려하며 수정하는 것은 항의의 대상이 되었던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에 대해 앞으로 전라북도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본다. 더구나 전국적으로 지역마다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대한 항의가 있는 현실에서 전라북도의 태도는, 정말 전라북도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구제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더해 주는 것이다. 아예 시행규칙(안)에서 차별행위의 정의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특정 종교의 반발까지 예상하였음에도 이러한 시행규칙(안)을 마련하여 입법예고했다가 이를 철회 또는 수정하는 행위가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며,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금지되는 차별사유에는 성적 지향도 포함된다. 성적 지향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또는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성적인 모습이다. 이는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를 이유로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슈가 되었듯이, 성적 지향은 찬성하거나 반대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전라북도는 특정 종교를 가진 일부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핑계로 시행규칙(안)에서 차별행위에 관한 정의 부분을 삭제하였다. 이러한 행태가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일부 종교단체나 종교인들의 지지나 반대를 의식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인권은 정치적 거래나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라북도가 인권에 관한 잘못된 의견을 받아들인 모양새가 앞으로도 반인권적 항의에 굴복할 가능성을 보여줘 전라북도에서 인권보장이 후퇴하는 것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전라북도가 정말 인권보장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반인권적인 항의를 수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인권에 관한 확실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잘못된 인권의식의 개선을 도모하여야 한다. 주로 인권센터를 설치·운영하기 위해서 만든 시행규칙의 제정·시행도 이에 대해 강도 높게 항의하는 자들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히 소수자·약자의 인권이 더욱 잘 보장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과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인권을 말할 수 있겠는가?
최근 전라북도는 문재인 대통령과 송하진 도지사의 소통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새 정부와의 소통에 대한 기대가 크다면 전라북도는 새 정부의 인권보장에 대한 입장과 관점을 존중하고, 당연히 인권의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지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후보이던 때 문재인 대통령도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의 문제가 아니며, 각자의 지향이며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라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이번 시행규칙의 제정·시행과 관련하여 전라북도가 보여준 태도는 인권보장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권보장이란 이에 관한 제도를 만들고 만들어진 기구만 운영하면 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인권의식에 바탕을 두고 정책을 집행하고 제도를 운영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릇된 인권의식에 기초한 거센 항의에 대해서는, 그것이 가지는 정치적 지지나 반대 또는 선거에서의 득실을 의식하면서 상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권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하며,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잘못된 인권의식에 대한 개선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전라북도인권조례 시행규칙의 제정시행과정에서 전라북도가 보여준 태도에 우려를 표한다. 우리는 전라북도가 도민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최대한의 제대로 된 노력을 하는지, 감시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전라북도가 인권보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시민사회단체와 소통을 거부하고 인권의 후퇴를 가져오면 즉각 투쟁에 임할 것이다.
2017.5.25
전북여성단체연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인권연대17-02(전라북도 규탄).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