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수능이 코앞인데 공포는 사치다?

지진의 공포 앞에 뛰쳐나갈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한 존재들에 대하여


지난 12일 경주 인근을 강타한 지진은 한반도가 고강도 지진으로부터 결코 안전한 지대가 아님을 다시금 확인해준 자연의 응답이었다. 한반도 남부 전역이 지진에 흔들렸던 몇 시간 동안, 핵발전소가 즐비하고 방사능폐기물처리장까지 끌어안고 있던 동해안 남부지역의 시민들이 경험했을 공포를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에 사는 시민들이 감히 짐작하긴 힘들다. 많은 이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대피하고 가까운 이들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애태우던 바로 그 시간, 그 당연했던 공포마저도 '사치'라는 윽박지름 앞에 숨죽여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흔들리는 교실에서 뛰쳐나갈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했던 학생들이다.


한반도 지진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지난 12일의 지진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지진 당시 공포에 떨어야 했던 경주와 경주 인근 지역 학생들의 울분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1차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학생들을 귀가시킨 학교도 있었지만, 어떤 학생들은 강제야자에 묶여 학습을 지속하도록 강요당했다. "학교에서 죽나 거리에서 죽나 똑같으니 여기 있어라." "동요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수능이 66일 남았는데 지진이 무슨 대수냐." "무단외출시 벌점 부과하겠다." 공포에 떠는 학생들에게 학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학교가 쏟아낸 말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 대피 여부의 판단은 우연히 당일 야자 감독을 맡은 교사들의 '개인적 판단'에 맡겨졌다. 건물이 흔들리는 공포를 느꼈던 학생들에게 '집중하지 못한 탓'이라는 비난을 쏟아낸 교사도 있었다고 한다. 놀라서 교실에서 뛰쳐나온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한 학교도 있었고, 압수해둔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아 학생들이 가족과 지인의 안부를 확인할 통신의 기회마저 가로막은 학교도 있었다. 재난대응매뉴얼은 휴지통에 버려졌다. 내진 설계된 학교 건물이 전국에 셋 중 하나도 되지 않고, 진앙지에서 가까운 경북은 그마저도 18%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많은 학생들이 공포의 밤을 보내야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대응 매뉴얼을 갖추겠다며 떠들썩했던 교육당국이 과연 학생의 안전을 책임질 역량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위기의 순간 학교 건물을 뛰쳐나올 자유도, 사랑하는 이들의 안부를 확인할 자유도 없는 '자율학습'이 과연 자율학습일 수 있는가. 학생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학습을 강행하는 것이 학교의 본령인가. 교사는 자신과 학생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보다 학생을 붙잡아둘 의무를 우선시해야 할 존재인가. 학생은 두렵고 교사는 참담해질 수밖에 없는 교육을 언제까지 강행할 셈인가.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지금, 교육당국이 '가만히 있으라'는 무책임한 명령을 계속 강행한다면 우리는 차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참사를 다시금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특히 학생들을 공포의 밤으로 몰아넣은 학교들이 학생인권조례조차 없고, 학생의 의사와 무관하게 밤늦은 시간까지 학생을 학교에 붙잡아두는 횡포를 마음껏 자행해온 지역들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학생인권 보장 없이 학생 안전도 없다. 

- 교육부와 교육청, 각급 학교는 재난대응 시스템을 긴급 재점검하라.

- 해당 교육청은 문제가 된 학교를 조속히 파악하여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라.

- 문제가 된 학교들은 학생들이 겪어낸 공포의 밤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라.

- 학생의 의사를 무시한 강제 학습을 즉각 중단하라.

- 휴대전화 강제 수거 관행을 즉각 중단하고, 학생에게 통신의 자유를 보장하라.


2016년 9월 14일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보도자료]경주지진_학교대응관련성명(160914).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