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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멀리서 헬리콥터가 지붕사이를 스치듯이 날아다니며

쉬파리처럼 잠시 맴돌다가 방향을 바꾸어 날아가 버렸다.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엿보는 순찰기였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한다.

이 기계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이 시계 안에 들어있는 한, 그의 일거일동은 다 보이고 들린다.


1948년 집필된 조지오웰의 소설 「1984」의 한 구절이지만, 2016년 한국의 현실과도 의미심장하게 맞닿아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에 제공된 통신자료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467만5415건, 문서 수 기준으로 56만4847건이었다. 2015년 전체에는 1057만 건에 달해, 전 국민 5명 중 1명의 통신자료가 국가기관에 제공된 것이다.

지난 3월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수사기관의 국민감시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시민들의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이 무차별 수집해 충격을 주고 있다. 3월부터 전국 시민사회단체가 헌법의 영장주의 원칙을 무력화하고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무단수집 부당성을 알리며 제도 개선을 위해 통신자료무단수집 확인 국민 캠페인을 본격 시작하였다.

시민들이 각 이동통신사 통신자료제공내역을 열람한 결과 현재까지 1,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통신자료가 여러 수사기관에 제공됐음을 확인했다. 전라북도에서도 종교인, 정당인, 기자, 노동조합원, 시민단체 활동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까지 수사기관에서 무차별 통신자료를 수집했음이 드러났다.

국가기관은 통신자료를 수집하면서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제공요청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고, 각 개인이 이동통신사에 개인정보조회신청을 통해서야 자신의 정보가 무단수집 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집한 기관도 가지각색이다. 경찰청과 검찰청, 국정원까지 등장한다. 요청지역도 전국에 퍼져있고, 전북 지역 검찰∙경찰이 타지역 시민의 개인정보를 무단수집한 사례도 있다. 개인정보를 무단수집당한 시민들은 정보∙수사기관에서 무슨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했는지 모르고 있다. 정보∙수사기관은 무단수집한 이유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통신자료를 수집한 시기를 보면 그 의도를 추정해볼 수 있다. 민중총궐기 직후인 2015년 12월에 통신자료 무단수집이 폭증했는데, 이는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감시∙사찰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통신자료를 무단수집 당한 시민 중 대다수는 아예 정보·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은 바 없는데, 이는 수사기관 소속 직원이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정보부터 털어본 셈이다. 수사 여부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위헌적 공권력 행사다.

이에 통신자료를 무단수집 당한 500여명의 청구인이 2016년 5월 18일, 국가기관이 통신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어 2016년 5월 25일에는 수집 이유조차 밝히지 않은 채 과도하게 통신자료를 수집해온 정보∙수사기관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소송 및 행정소송을 냈고, 이동통신사에는 자료제공요청사유공개청구 소송을 냈다. 전북에서도 11명의 노동자·시민들이 헌법소원 청구에 참여했고, 손해배상청구에도 함께 하고 있다.

국가가 마음대로 시민의 정보를 수집하는 사회는, 빅브라더가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통제하고 시민은 권력을 두려워하며 거기에 복종한다는, 소설 「1984」가 묘사했던 암울한 미래사회의 모습이다. 우리는 불의한 집단이 국가기관을 사적으로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했던 시대를 경험해봤었기에 통제 받지 않는 국가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국정원의 시민 감시사찰에 날개를 달아준 테러방지법 폐기를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 배경에서이다.

우리는 이후에도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무슨 목적으로 수집했는지 확인하고,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한 이동통신사와 무단수집한 정보∘수사기관을 규탄하는 행동을 진행할 것이다. 개인정보의 주체는 개인에게 있으며, 제공 여부를 결정할 권리 및 개인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권리 역시 정보의 주체에게 있다. 국가권력이 시민의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일은 더 이상 벌어져서는 안 되며 우리는 이를 위해 감시의 끈을 놓지 않고 적극 나설 것이다.

2016년 5월 26일

 전북평화와인권연대·민주노총전북본부


통신자료 무단수집 규탄 기자회견문.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