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양심을 가두는 감시의 족쇄를 풀자
보안관찰법 합헌 결정에 대한 논평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는 보안관찰법에 대해 10여년 만에 합헌 결정을 내놨다. 헌법재판소는 “보안찰법은 우리 국가적 이념이고 우리 헌법의 정치적 기본질서이기도 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보장, 북한공산주의자들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라며 2003년 합헌 결정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우리는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스스로 저버린 헌법재판소를 규탄한다.
보안관찰법에 따라 피보안관찰자가 되면 3개월마다 주요 활동 사항, 연락하거나 만난 보안관찰처분대상자의 인적사항과 일시·장소·내용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사를 할 때는 그 이유를 신고해야 하며 국외여행이나 10일 이상 국내여행을 할 때도 여행 목적과 기간, 동행자 등을 미리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검찰과 경찰은 재범방지라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연락을 금지할 수 있고 집회·시위 장소 출입을 금지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처벌을 하는 것이 보안관찰법이다. 이처럼 보안관찰법은 사생활 전반에 관여함으로써 사상과 양심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철창만 없을 뿐이지 오히려 자발적인 복종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보안관찰법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철창이자 엄청난 감시권력이다.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보안관찰처분이 “내심의 작용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보안관찰처분대상자가 보안관찰해당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내심의 영역을 벗어나 외부에 표출되는 경우에 재범의 방지를 위하여 내려지는 특별예방적 목적의 처분”이라며 보안관찰법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보안관찰법은 일제의 사상범보호관찰법의 취지와 형식을 계승한 법으로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친북적’ 또는 ‘용공적’ 사상과 관련된 정치 범죄를 특별히 단죄하고 사상 전향을 강요하고 있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 태생적으로 사상범을 관리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대상자에 대한 권력의 끈질긴 추적과 통제가 주된 목적이다. 게다가 보안관찰처분 면제 신청을 위해서는 이미 2003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된 준법서약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경찰이 피보안관찰자를 조사하면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그 대답이 보안관찰처분 갱신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의 생각을 억지로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을 고백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헌법재판소가 외면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도 두 차례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통해 정부에 보안관찰법의 폐지 또는 단계적 완화 계획 수립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아시아의 대표적 비정부기구인 아시아인권위원회(AHRC)가 보안관찰법의 개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보안관찰제도는 이미 처벌받은 사람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추측하며 불이익을 가하다는 점에서 헌법이 금지하는 거듭처벌에 해당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보안처분은…형벌과는 다른 독자적 의의를 가진 사회보호적인 처분이므로 형벌과 보안처분은 서로 병과하여 선고한다고 해서 그것이…이중처벌금지원칙에 해당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견해”라는 기존 견해만 되풀이했다. 이는 당사자에게 미치는 인권침해의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행한 ‘보안관찰대상자 인권침해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담당 형사가 민가협 주최의 집회나 모임은 가면 안 된다고 강요한 사례, 출소 후 목장에 가서 한달 가량 일을 했는데 담당 형사가 목장 주인에게 “이 사람은 사상이 불순하고, 독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해서 쫓겨난 사례도 있었다. 게다가 보안관찰법은 법무부차관이 위원장인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와 법무부장관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법원의 판결이 없어도 보안관찰처분을 부과할 수 있어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되고 법관에 의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심지어 보안관찰법은 보안관찰처분의 기간을 갱신할 수 있다고만 규정할 뿐 갱신 기간의 횟수나 최대한을 정하고 있지 않아 절대적 부정기 보안처분을 허용하고 있다. 2년마다 갱신되기만 하면 대상자는 사망할 때까지 보안관찰처분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이는 형사제재 기간의 한정을 요구하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징역 3년 6월을 선고 받고 복역한 최기영씨는 신고 의무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지만 지난해 7월 벌금 납부를 거부하고 노역장에 유치되는 등 보안관찰법에 대한 불복종이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8월에는 정부의 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복역한 한상렬 목사가 출소 후 보안관찰법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긴급체포 되기도 했다. 2013년 기준으로 2000여명의 보안관찰처분대상자와 40여명의 피보안관찰자가 공안기구의 감시를 받으며 고통 받고 있다.
우리는 이번 합헌 결정에 절망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보안관찰법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과 양립할 수 없다. 우리는 보안관찰법에 불복종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안관찰법,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을 끝내 열어갈 것이다.
2015년 12월 3일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
151203_보도자료_보안관찰법_헌법소원_최종.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