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왜곡과 혐오 즉각 중단하라

●최근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으로 교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적극 지지하며,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인 극심한 경쟁 교육과 승자독식 체제 속에서 내 아이의 안위와 점수만 소중한 가치가 되어버린 사회에 대한 성찰과 개혁을 촉구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교사에게 집중되는 과도한 부담을 덜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예를 들면 교사 정원 확대나 대체교사 확충, 학폭업무나 행정업무 배제 등의 방안에 대해서는 전혀 내어놓지 않고, 학생생활지도와 학부모민원대응에만 초점을 둔 ‘교권 회복 및 보고 강화 종합방안’을 어제(23일) 발표했다.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교사를 힘들게 한 책임을 학생·학부모에게만 떠넘기는 꼴이다. 특히 교육부 방안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세간에서 근거없이 떠돌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오해와 억측, 혐오의 내용을 그대로 담아 정책화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교육당국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터무니없는 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의 지나친 강조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식조사로 언급할 일이 아니라 실제 교육활동 침해 정도와 학생인권조례 유무의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실증조사로 증명해야 할 일이다. 실제로는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도 교육활동 침해 현상은 동일하게 나타나며, 오히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교권침해 빈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는 통계자료도 여러번 제시된 바 있다. 그것은 인권의 특성이 상호존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 존엄성을 존중해주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인권과 교권은 함께 모두 강조되어야 한다.

●교육부는 지난 17일 발표한 ‘학생생활지도 고시’가 학생인권조례와 상충된다며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 개선 지원’이라는 추진과제를 설정했다. 그러면서 조례 재정비를 위한 예시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조례를 만들고 고쳐나가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권한인데, 중앙정부가 조례를 불합리하다고 규정하고 조례 예시안까지 제시하며 개정을 압박한 것이다.

게다가 ‘고시에 따라 제한되는 조례 내용’을 언급했는데 모두 오해와 억측뿐이다. 학생인권조례에서 명시한 ‘사생활의 자유’는 휴대전화 소지·관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이고 이에 따라 등교시 일괄수거를 지양하라는 것이 국가인권위의 해석이지, 수업시간에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교육활동 시간 내에 보관조치하는 것도 이미 학칙으로 보장되어 있다.

또한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 인해 수업중 칭찬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차별은 자격과 조건이 같음에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뜻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하는 것이 바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이며, 잘한 학생에게 칭찬과 상을, 잘못한 학생에게 지도와 벌을 부여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칭찬도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조례를 비아냥대는 주장에 불과하다.

‘휴식권’도 마찬가지다. 전북학생인권조례의 결정례와 해설자료에서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쉬는 시간을 반복적으로 박탈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 수업중에 잠자는 것을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수업 중 잠자는 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교사의 당연한 책무이며, 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수준과 적성을 맞추기 힘든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 탓이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이런 오해와 혐오에 기반한 주장을 펼치는 것은 교육부나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께(22일) ‘전북교사노조’는 교육활동보호 해결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교사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전북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주장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과는 거리가 먼 해석으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오해와 혐오를 유발하고 있다.

●이 단체는 교사 설문조사에서 “수업방해, 교권침해, 학교폭력을 한 학생을 수업중에 교장실로 보내면 전북학생인권조례에 의거하여 학습권 침해이고 쉬는 시간에 학폭 사안을 조사해도 휴식권 침해가 됩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 아니다. 전북학생인권조례 제5조는 “학생은 법령과 학칙에 근거한 정당한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학습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하여, 학생의 수업 참여 제한이나 분리조치는 정당한 사유와 학칙 등의 절차에 따라 가능하다. 게다가 학교폭력 사안조사의 경우 교육청 지침에 “수업시간 이외의 시간을 가급적 활용하고 부득이하게 수업시간에 할 경우에는 보호자에게 알리고 별도의 학습기회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어 수업시간과 쉬는시간에 사안조사를 하는 것이 모두 가능하다. 이 단체의 과도한 우려와는 달리, 정당한 교육활동에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학생인권조례 위반으로 결정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이 단체는 “전북학생인권조례에는 '권리' 조항만 있고 '책임' 조항이 없습니다. 이제 전북학생인권조례에 '책임' 조항도 있어야 할 때입니다.”라고 썼다.

이것도 거짓 주장이다. 전북학생인권조례 제4조는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학생이 교사, 학생 등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에는 관련 법령과 학칙에 따른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책임조항이 권리조항에 비해 구체적이지 않은 이유는, 지방자치 법규에서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은 법률의 위임이 없이는 효력을 갖지 못하는 반면,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인권보장의 의무를 밝히고 인권보장의 이행수단을 마련하는 것은 자치사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교육부와 전북교사노조가 공통으로 학생의 ‘휴식권’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는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 아동·청소년의 휴식권 보장이 미비하다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되고 있다. 2018년 발간되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된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대한민국 아동보고서>에서 이를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학생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음이 명시되었다.

최근의 학력증진 강조, 평가 강화 정책과 지역인재 진학률 높이기, 보충학습·자율학습 권장 분위기 등이 학생들의 휴식권을 위협하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자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정규교과수업 이외 시간의 휴식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교육권은 교수자에게 학습자의 인권을 제한해서라도 교육할 권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최근 국제인권기구는 이 점을 한국에 다시 전달했다. 유엔 교육권 특별보고관 등 유엔인권이사회 4개 특별절차는 올해 1월 25일 한국 정부에 서울·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 및 2022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해 우려를 제기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서한의 내용에는 교육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유엔 사회권규약 제13조 ‘모든 사람의 교육권을 인정한다’를 언급하며, ‘교육이 인간의 인격과 존엄성의 완전한 발전을 목표로 해야 하며 인권존중과 기본적인 자유를 강화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교육을 이유로 학생의 인권을 축소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성립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교육당국은 교사에게 모든 것을 전가해온 불합리한 독박 구조를 깨뜨려야 할 판에 늘봄학교 같은 정책으로 더욱 교사 업무를 늘리고 있다. 그러면서 학생인권을 더욱 제한해서 교사를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방향이다. 그런다고 교육활동 보호가 될리가 없다.

정부나 정치권, 일부 교원단체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정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 알면서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교사도 죽으면 안 되고, 학생도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터무니없는 왜곡과 혐오를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촉구한다.

2023. 8. 24.

전북교육개혁과교육자치를위한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