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개악이 교권보장 대책이 될 수 없다
-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왜곡을 중단하라! -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이후, 정부와 여당은 지방자치 법규인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력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말은 그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북에서도 이에 공명하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다. 최근 전북교사노조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권’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조사에는 교사의 ‘경미한 아동학대’에 대한 직위해제 면제를 요청하는 것과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습권 · 휴식권에 대한 학생의 책임 조항을 신설하는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인권 및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잘못된 진단이며 사실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 학생의 권리뿐 아니라 책임 조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전북 학생인권조례 제4조(책임과 의무)⓷ 항목에서,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학생이 교사, 학생 등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에는 관련 법령과 학칙에 따른 책임을 진다”고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방자치 법규에서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은 법률의 위임이 없이는 효력을 갖지 못하며, 인권 조례의 역할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원칙과 체계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전라북도교육청 교권침해로부터 안전한 교육활동 보호 조례〉의 제10조⓵ 쉴 권리 보장 항목에서도 교사의 쉴 권리에 대해서 다루고 있을 뿐, 어느 상황에서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조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해당 설문에서 교사노조는 학생인권조례의 학습권 · 휴식권 보장 조항으로 인해 분리조치와 같은 정당한 교육행위가 침해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교사노조가 해당 권리를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 구제 업무를 담당했던 (전)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발간한 결정례집에 의하면,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교사가 학생의 학습권 · 휴식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한 사례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해당 사안은 교과목 연간 진도 계획에 부합하지 않게 주로 미술 수업만을 진행하고, 학생들에게 택배나 생리대 등 사적 심부름을 시키는 등 명백한 학생인권 침해 사안이었다. 이러한 사례를 제외하면 학생인권조례상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하지 않은 교육행위를 인권침해로 판단할 기준은 없다.
교원을 괴롭히는 악의적인 민원에 대한 교육행정의 적극적 조처가 필요하다. 그러나 먼저 ‘악성 민원을 일으키는 보호자 및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 vs 교사’라는 개인 대 개인의 갈등 구도의 재생산을 멈춰야 한다.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는 교원의 옆에는, 여전히 뿌리뽑히지 못한 학생인권 침해를 견디고 있는 학생이 있다. 아직 많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 휴대전화, 용의복장 규제와 같은 구조적 인권침해에서부터 폭언이나 체벌과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진정이나 민원은 물론, 보호자에게 알리기조차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갈등 구도에서 벗어나 진짜 학교의 회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학생인권 법제화 등을 통해 교육활동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학생인권을 약화시킨다고 교사의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논의가 진전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때를 틈타 학생인권과 교사가 대립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학생·청소년의 인권 보장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권친화적인 학교를 바라는 시민들과 연대해 학생인권 후퇴를 막아낼 것이다.
2023. 8. 17.
전북평화와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