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말 뿐인 학생중심! 졸속적인 조례 추진!
전북교육청은 전북교육인권조례의 추진을 중단하고 제대로 된 교육주체 권리보장에 나서라!
전라북도교육청이 <전라북도교육청 교육 인권 증진 기본 조례(이하 교육인권조례)> 제정계획을 발표했다. ‘학생, 교직원, 보호자 등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인권을 상호 존중하는 조례 제정을 통한 민주적이고 인권 우호적인 학교 문화 조성’을 조례 제정의 목적으로 밝혔다. 교육청이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에 따라 교육체계 내 각 주체들의 인권보장에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2월 10일 공청회를 비롯해 현재 파악되고 있는 교육인권조례의 내용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이 드러났다. 공청회에 내놓은 조례안대로라면 조례 제정의 목적과는 달리, 사실상 학생인권조례를 축소시키고 인권보장제도로서 매우 미흡한 내용이다. 이럴 경우 전북교육인권조례 제정은 교육주체들의 권리 보장 체계의 확대가 아닌 축소와 약화로 이어질 뿐이다. 이에 우리는 전북교육인권조례 졸속 추진 중단을 촉구한다.
교육인권조례가 ‘학생인권 VS 교권’이라는 잘못된 구도를 담아서는 안된다.
서거석 교육감과 전북교육청은 모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면서도 학교 구성원들의 인권에 대한 논의를 마치 주체들의 관계가 문제인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 예컨대 ‘교권과 학생인권’이라는 이분법 아래 놓고 누가 더 이득을 보고 있는지, 어떻게 분쟁을 조정해야 하는 지로 좁히고 있다. 그러나 인권은 학생,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에게 불평등한 학교와 그것이 담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살피고 바꿔낼 수 있도록 하는 힘이다. 나아가 이런 힘을 통해서 모든 주체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체계의 인권보장에 있어 학교와 사회안의 소수자인 학생들에 대한 인권보장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제정된 전북학생인권조례가 10년을 맞이하며 체벌 금지 등 개선이 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들은 학교 현장에서 자의적인 생활지도에 의한 인권침해와 차별의 문제를 겪고 있음이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인권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들이 발생하는 학교는 학생만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에게도 인권친화적인 공간이 아니다.
또한 교육인권조례에서 교원의 권한인 교권을 학생인권과 동일선상에서 보는 구도 역시 잘못되었다. 현행법 체계에서 학생 인권은 그저 선언적 문구로만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기본법 12조는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고 규정하고, 초·중등교육법 18조의 4 “학교의 설립·경영자와 학교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고 명시하여 법체계 내에도 학생의 인권보장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권리 보장의 내용이 아닌 추상적 선언이기 때문에 인권보장의 법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학생인권보장의 국가 단위의 입법과 행정의 공백을 교육자치법규를 통해 부분적으로 보완하고자 했던 사회적 노력이 바로 학생인권조례였다. 반면 교원의 교권보장과 관련되어서는 교육활동보호특별법이 제정되어 있고, 자치법규차원에선 전북교육활동보호조례 등이 제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행정의 제도와 절차가 학생인권조례 외에 마련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교육인권조례의 추진은 학생인권을 위축시킬 뿐이다.
게다가 교원의 권한을 인권조례에 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전북교육청은 교육인권조례안에 교원의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도 구제신청과 그에 따른 조치가 가능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이는 인권보장 자치규범에서 교육활동 침해를 인권침해로 규범화하는 것은 통념적으로 교권(敎勸)이라는 말이 ‘교사의 가르칠 권리’로 이해되고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례(1992.11.12. 89헌마88) 등을 참고하면 교원의 교권은 헌법적 권리가 아니라, 학생의 학습권이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으로부터 유래된 직무상의 권한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육활동에 따른 직무상의 권한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서 인정하는 인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봐야 하며, 이에 따라 인권제도의 권리구제 절차의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편으로 교권보장을 인권규범 안에 넣는 것은 교원 외 행정직·공무직 등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주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졸속추진의 기미를 보이는 교육인권조례
학생인권과 교원을 비롯한 교육계 노동자들의 권리 및 권한은 각각 다른 성격의 조치와 법적·행정적 제도를 필요로 한다. 학생은 교육권 보장과 함께 휴식의 권리, 놀 권리, 개성 실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의 권리가 교육환경 내에서 희생되지 않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다르게 교직원은 고용관계 상의 노동권의 보장, 학생의 인권보장을 위한 권한을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광범위한 학생인권과 교직원 등의 인권의 내용과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와 절차를 하나의 기구와 조례에 상세하게 담는 것이 매우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북교육청은 이전까지 ‘학생인권 보장에 정책이 치우쳤다’는 통념과 선험적 주장을 수용하기에 앞서 객관적인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교육주체들의 인권침해와 차별의 문제를 마치 상호 간의 관계의 문제로만 보거나 상호 존중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인권보장의 의무주체인 학교관리자와 교육감 등의 책임자들이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인권조례안은 제정의 절차에 있어서도 졸속추진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핵심적인 내용이 모두 삭제됨에도 불구하고 2월 10일 공청회에 참여했던 70여명의 시민들 중에서 학생이나 청소년 중은 5명 미만일 정도로 매우 적었다. ‘학생중심 미래교육’이라는 현 전북교육청의 슬로건이 무색할 뿐이다. 또한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전북교육청은 공청회와 동시에 입법예고 절차를 들어가려고 했으며, 입법예고 기간은 약 2주 정도만 두려고 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반영하여 조례안을 준비하는 것이 공청회의 의미인데, 공청회와 동시에 조례안을 입법예고 하는 것도 지극히 이례적이다. 사실상 학생인권조례 지우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공청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인권정책 담당자, 교직원, 학부모, 인권단체 활동가 등이 제기한 교육인권조례에 대한 우려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아울러 행정절차법은 특별한 사정이 아닌 이상 자치법규 입법예고는 20일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보면 기본조례 제정임에도 불구하고 입법예고를 단기간만 하는 점도 문제다.
전북학생인권조례 제정 절차와 비교해도 교육인권조례 제정의 절차적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당시 전북교육청은 전북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전북지역의 4개 권역별 공청회를 진행하고, 인권의 주체인 학생 토론자 섭외는 물론 학생들의 행사 참여를 위해 공청회를 5시에 시작하는 행정력을 발휘했다. 학생과 청소년만이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참여도 미비한 상황에서,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인권조례를 제정을 이런 방식으로 제정하게 된다면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교육인권조례 제정이 아니라, 각 주체들의 권리보장제도부터 점검하라!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말은 반대로 ‘누구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될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교육인권조례가 바로 그런 우려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서거석 교육감은 17개 시도교육청 중 전국 최초의 교육인권조례 시도라는 허상을 버리고 학생인권조례 개악 시도를 중단하라.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재 시행중인 전북학생인권조례를 비롯한 각 주체들의 권리 보장 상황을 객관적 점검하고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북교육청의 전북교육인권조례의 추진을 중단하고 제대로 된 교육주체 권리보장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2023. 2. 16.
전북교육개혁과교육자치를위한시민연대, 성평등한청소년인권실현을위한전북시민연대(가),
성평등활동기획단바스락, 전북여성단체연합,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