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자 회 견 문>

고 홍정운 님을 추모합니다.

정부는 현장실습 폐지하고 근본대책 수립하라!


지난 6일, 전남 여수의 한 요트관광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 고 홍정운 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홍정운 님은 잠수복을 입고 요트 바닥에 붙은 조개, 따개비를 제거하다 물에 잠겨 사망했습니다. 현장실습협약서에 따르면 관광객 안내 업무를 배워야 했던 홍정운 님은 평소 물을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업체의 요구에 잠수복을 입고 물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7년에도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 제주 생수업체에서도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일하러 나갔던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이와 같은 비참한 죽음이 반복되어야만 합니까. 고 홍정운 님 죽음 앞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며 동시에 가슴 깊이 분노합니다.

2017년, 연이은 실습생 사망사건 이후 교육부가 ‘학습중심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선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장실습은 여전히 조기취업의 통로였고, 정부도 취업률 제고를 위해 현장실습을 이용했습니다. 선도기업의 기준은 유명무실했고 실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는 점검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규제는 완화되었고 취업률 압박은 높아졌습니다.

전라북도교육청 역시 이와 같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체마저 ‘선도기업’으로 선정해온 것이 현실입니다. 현장실습 사업체를 정하는데 있어 학습 목적의 실습이 시행되는지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 되지 못했습니다. 현장실습 사업체들에 각종 법기준 위반 사례가 있어도 면밀한 지도·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수에서 발생한 홍정운 님의 비극은 전북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장실습 제도를 이용한 취업률 제고는 사업체 기준을 완화하는 방법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사업체 기준이 완화되니 전라북도교육청 현장실습 사업체들의 질 역시 반비례하여 낮아졌습니다. 사업체 규모는 반토막이 났고 사업체 평균임금은 해가 지나도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학생들을 쥐어짜는 취업정책은 불안전 고용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이와 같은 제로섬 게임을 멈춰야 합니다.
*사업체 규모 : `18년 평균 153.5명 -> `19년 73.6명, 신규입사자 평균임금 : `18년 2,620만 원 -> `19년 2,477만 원

교육적 목적의 현장실습은 없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으로 구인난에 시달려 현장실습생을 필요로 하는 사업체, 단순작업만 반복하는 사업체, 혼자 작업 해야 하는 소규모 사업체들에서 무엇을 실습하며 무엇을 배운단 말입니까. 애초 기업체에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됐던 현장실습제도입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 본질이 변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숨과 맞바꿔야 하는 열정페이, 열정노동 현장실습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자리 정책입니다.

전라북도 노동시민사회단체는 2017년 유플러스 고객센터 실습생 사망사건 이후 꾸준히 직업계고 현장실습의 문제를 제기하며 감시와 비판의 끈을 놓지 않아 왔습니다. 우리가 전라북도교육청 현장실습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것 역시 이와 같은 활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하지만 기준은 완화되고 예외는 늘어가는 가운데 현행 현장실습 제도 아래 발생하는 문제를 바꿔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고 홍정운 님의 비극을 목도하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함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이에 오늘부로 전북 노동시민사회를 대표하여 참여했던 4명은 현장실습위원회 위원직을 사임합니다.

그리고 정부, 교육청에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노동시민사회와 진솔하게 대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첫째, 현장실습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현장실습을 일자리 정책의 수단으로 왜곡해온 정부·관료들은 책임회피를 이제 멈추십시오. 현장실습 제도는 어떻게 개선해도 결국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명확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둘째, 그간 전라북도교육청에서 현장실습이 이루어졌던 사업체의 현황을 즉각 전수조사하십시오. 사업체에 노동관계법령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목적에 부합한 실습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현장실습으로 나갔던 학생이 재직하고 있는지 등을 외부 전문가와 함께 면밀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셋째,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작은 사업장·중소기업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졸 취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얻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일선 학교에, 교육부에 맡겨놓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청와대가, 고용노동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현장실습생의 사망 사건이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고 약속했습니다.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고 홍정운 님의 비극 앞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가 직접 나서 답할 때입니다.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정부가 현장실습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전국의 청소년노동인권단체들과 연대해 투쟁할 것입니다.

2021년 10월 14일

고 홍종운님 추모·현장실습 폐지 촉구 전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