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 땅, 한반도를 평화의 숲으로 가꾸기 위하여
유랑단 ‘평화바람’을 발족합니다
왜 우리는 평화의 전국순례를 시작하는가?
1. 평화의 새가 되어 전국을 떠돌아다니려고 합니다.
국익을 위해 파병을 찬성하는 사람이 50%가 넘는다고 합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총을 드는 연습을 한 의무병들을 배출한 나라여서 그럴까요?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우리나라가 위험해진다는 애국심 높은 양반들이 많아서 그럴까요?
국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가눠도 상관없다는,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는 사회의 여론을 접하며, 그동안 평화를 외친, 거리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지난 날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우리들은 그동안 평화의 씨앗이 되고자 할 수 있는 투쟁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 씨앗의 열매를 기다리며, 답답한 가슴을 부여안고 매향리에서 군산까지, 파주에서 미국대사관까지, 부안에서 동두천까지, 한반도에서 미국 워싱톤까지 달리고 또 달려왔습니다.
농성, 집회, 선전, 거리미사로 전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한다’ 는 각오로 거리에서 걸레처럼 취급되어도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파병의 논리는 여전히 거셉니다.
우리국민을 이라크의 총알받이로 보내자는 미국의 주장앞에서 정부와 이 땅의 지식인들은 “이라크의 어린이를 죽이지 말라”는 초등학생의 외침 보다도 못한 생각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나라.
양심을 땅 속에 묻어 둔 나라.
경제적 이윤을 앞세워, 살인을 해도 된다는 나라.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의 새벽은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이제 평화의 날개를 달고 새 출발을 하고자 합니다.
2. ‘무장’하고 ‘침공’ 하자는 미국의 파병 논리의 부당함을 전국 방방곳곳에 알리겠습니다.
해방 후 한국은 성장 /효율지상주의를 앞세워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서민들은 허리띠를 매도 달라진 것이 없는, 더 어려워진 빈곤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며 파국의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의 위기가 닥친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쌀을 그냥 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냥 주는 쌀인 줄 알았습니다. 한참 먹고 난 후 배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어야 하니, 그 약을 사먹으라고 합니다. 안 먹자니 죽게 생겼고 먹으려고 하니 너무 비쌉니다. 미국은 그 약을 팔아서 공짜로 준 쌀의 원금까지 찾아갑니다. 우리의 우방이라고 자처한 미국은 그동안 그들이 쌓아놓은 불공평한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앞세워,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제2의 베트남을 방불케하는 이라크에 다시 한국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 야만의 논리, 미국의 부도덕한 양심을 고발하는 순레단이 되려고 합니다.
3. 발길을 멈춘 이들과 평화의 마당을 열어가겠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 다리 밑에 모인 사람들 틈에서 약장수의 만담에 넋을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재미있어 학교에 가는 것도 잊었었지요. 평화를 향한 전국순례는 약장수와 같은 평화의 유랑극단입니다. 전쟁의 소용돌이가 땅을 뜨겁게 달구는 부도덕한 현실을 고발하고자, 평화의 순례단은 평화 ‘마당’의 주인인 ‘사람’을 찾아 이동할 것입니다.
주인공은 우리를 보며 지나다 발길을 멈춘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 아이들입니다.
발길을 멈춘 그들이 구경꾼을 넘어 자신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는 먹을 것을 준비하고 볼거리를 준비하며 가슴을 열어 평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입니다.
평화의 노래가 전국 곳곳의 마을에서 울릴 수 있도록, 지역의 단체들과 주민들에게 알려주십시오.
4.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잡이가 되어 평화를 만들어가겠습니다.
평화의 새들은 서울 미대사관에서 ‘평화순례’ 발족을 알리며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소비의 거리에서 시작하여 생산현장으로,
길 위에서, 광장에서, 시장 통에서, 어느 공장 휴게실에서,
집회 한번 나오기 힘든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과 함께
이 답답한 현실을 함께 이야기하며
가는 길목마다 평화의 깃발을 꽂겠습니다.
이동하고 움직일 때마다 우리가 꿈꾸는 ‘평화의 물결을 이루는 바람’이 조금씩 일 것을 믿습니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주변에서 중심으로 몰고 올 날을 꿈꿔 봅니다.
우리의 유랑은 시작만을 선포합니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순례입니다.
평화가 올 때까지 우리는 거리에서 잠을 자고, 거리에서 평화를 말하고, 일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이들과 함께 평화의 새가 되자고 그들의 손을 잡겠습니다.
이제 더 머뭇거리지 않고 떠나보려 합니다.
5. 평화마당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새끼가 새끼를 낳고,
바람이 바람을 몰고 오기를...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평화를 노래하고 연대를 호소하는 ‘바람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이제 길 떠날 차비를 하고 있는 유랑단 ‘평화바람’이
그 길목에서 당신을 만나고자 발족을 선포합니다.
2003년 11월 11일
유랑단 ‘평화바람(平風, Wind in Peace)’
[단장 문정현 신부]
■ 유랑단 ‘평화바람’ 출발 기자회견
2003. 11. 14(금) 오후1시 /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 문의
문정현 신부 011-480-2241 / 윤여관 011-451-3361
* 붙임- 문정현 신부 글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신부가 되어 생명을 지키고자,
평화 순례를 선포하며....]
저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래 지금까지 반미투쟁의 일선에서 살았습니다.
함께 민주화투쟁에 몸담았던 동지들이 정치를 한다, 직업을 바꾼다며 현장을 떠날 때 신부로써 군산 미군부대 우리땅찾기, SOFA, 매향리, 스토리 사격장, 노근리, 한강 독극물, 미대사관 옆 집회, 미군범죄,이라크 파병 등, 주민들이 목놓아 외치는 투쟁의 현장이라면 지팡이 하나 의지한 채 달려가 함께 싸웠습니다.
달겨간 현장마다 생명을 위협하고 평화를 깨는 것들 투성이기에, 기자회견, 대중집회에는 피할 수 없는 경찰과의 충돌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피가 터지도록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때론 집회장이 외롭기도 했습니다.
그 외로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온 이유는 가장 가난한 이들이 부당한 현실에 목놓아 싸우며 그곳에서 울부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가는 곳마다 모인 집회장은 간혹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도 있긴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렬의 대열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인가 빠진 듯 허전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연사보다는 참석자들이 능동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자리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안고 있던 차 부안투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금년 4월부터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 65일을 거의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습니다. 최근에는 100여일 동안 부안 핵폐기장 백지화 투쟁에 몸을 던지고 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들, 지남철같이 나를 끌어들인 주민들의 참여와 투쟁, 그리고 눈물로 쏟아진 주민들의 절박한 꿈이었습니다.
점점 노쇠하는 몸탓으로 피곤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현장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울분이 눈물로 감격이 채찍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석 기간 동안 연설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참자의 한 사람일 뿐이었고, 길 위에서 먹고 마시며 함께 하였습니다. 긴 투쟁을 만들고 버티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위해 갖가지 방법을 찾아 자기표현을 하였습니다. 함께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밤을 지새며 형제 자매의 정이 들었습니다. 이런 정은 긴 시간, 여러 날을 함께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부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부안투쟁은 그동안 이어온 반미투장에서 보면 긴시간의 외도였지만, 주민들을 통해 나의 삶을 돌이켜보며 돈 안내고 공부를 한 셈입니다. 그러나 한번도 내 마음에서 반미문제를 지워본 적이 없었기에. 이제 저는 제 자리로 돌아가 부안 주민들에게서 배운 것을 밑거름삼아 새 길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주민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거리의 전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만나는 마당을 열고 싶습니다. 어디든 찾아가서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야기하다 지치거나 싫증이나면 저 마다의 재능을 모아 노래하고 춤추고싶습니다. 유랑극단처럼....아마추어들이니 솜씨가 서투르면 서투른대로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담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은 오래전에 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추가파병결정으로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화물차 한대를 급하게 마련하였습니다. 다행이 그동안 자주 만나온 젊은 동지를 5명이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차 이름을 가칭 유랑극단 ‘평화의 바람ꡑ이라 붙였습니다.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며, 평화의 유랑자들이 되려고 합니다. 평화 유랑극단에 맞게 재담꾼, 재주꾼, 소리꾼 등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들 맹탕들입니다. 아마추어로써 전국을 떠돌려고 작정한 마당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문을 받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부족한대로, 그동안 쏟아온 평화운동의 온정을 다져서. 만담과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마당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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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비록 미약할 지라도 전국을 떠돌 평화순례가 평화를 일으키는 작은 바람이 되어 지친 이들에게 즐거움이 되고, 전쟁을 걱정하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전쟁을 막는 주민들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저의 투쟁을 지켜준 지팡이 하나가 평화의 지팡이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함께 평화의 새가 되어주십시오 .
내 나이 예순 중반,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참으로 짧게 느껴집니다. 건강치 못한 몸으로 이런 일을 꾸민다고, 주변에서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신부로써 살아오며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있다면, 이 땅의 폭력과 반평화가 사라지는 참민주 참평화를 위해 보낸 거리의 투쟁일 것입니다. 젊은 5명의 평화운동가와 다시 거리에서 잠자고 먹으며 떠돌아다니려는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평화를 만들기 위해, 서민들의 눈물을 거두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편에서 지팡이가 되어 주고 싶은 소망 때문입니다.
평화의 작은 순례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평화를 노래하겠습니다.
어린이들이 군가를 부르며 전쟁놀이를 하지않도록 마을을 돌아다니겠습니다.
잘난 지식인들이 ‘국익’을 운운하며 가난한 국민들의 세금을 이라크 땅에 쏟아붓지 않도록 외치겠습니다. 그리하여 미국 대사관의 오만함에 눈물을 쏟는 이들이 더 이상 없는 날이 올 때까지 미국 군대의 총알받이가 되는 청년이 더 이상은 없도록 평화를 위해 남은 일생을 살 수 있다면 남루해도 행복한 거리의 신부가 될 것 같습니다.
2003. 11. 12
미국 대사관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문 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