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을 들고 간 무장대는 어떻게 됐을까?

- 강문식 (후원회원, 한의사) -

‘지슬’ 상영소식을 듣고 4.3항쟁을 다뤘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를 보러갔다. ‘지슬’이 ‘감자’라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인 것도 영상이 한참 흘러나온 뒤에야 알아차렸다. 나름 한국근현대사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4.3에 대해 떠올리려 해보니 떠오는 게 별로 없었다. 제주도민의 1/10 이상이 죽었다는 것, 제주도민의 다수가 남한단독선거에 반대했었다는 것, 이런 단편적인 사실들이 내가 알고 있는 4.3의 전부이다. 그래서 영화 첫머리에 나오는 ‘해안선 5km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포고에서부터 섬짓하고 무거웠다. 그만큼 내가 제주도와 4.3에 대해 무심했구나 싶어 송구했다.

영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막이 달려있다. 극이 제주도 사투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자막 없이 들어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 내가 영상의 말을 이해할 수 없듯, 제주도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육지에서 온 토벌대가 일본인만큼이나 낯설고 거친 이방인이었을 게다. 특히 한편이 살의에 가득 차 몰려오는 마당에 이해와 화해가 끼어 들 여지는 거의 없다. 동굴에 피신해서도 마을에 남은 돼지가 굶는 게 걱정돼 밥 주러 다녀오고, 학교에 두고 온 책을 가지러 다녀오고... 그만큼 일상이 깨어지는 걸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일 것이다. 요즘도 당장 내일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어수선해도 우리들은 밥 먹고, 일하고, 사랑하는 일상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폭력은 일상과 더 선명하게 대비된다. 영상은 그렇게 흑백으로 전개된다.

흑백 영상을 활용한 영화의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평, 마당극 형식을 도입한 것이 압권이라는 평 등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여기저기서 읽을 수 있다. 4.3이 잔혹한 국가폭력이었다는 역사를 되새김질 하는 평도 많이 있다. 그런데 나는 좀 쌩뚱맞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귀에 들어온 대화 하나가 산에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다. 나에겐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거의 완벽하리만치 잊혀진 사람들이었다. 제주도 4.3항쟁의 시발점에는 경찰의 발포도 있었지만, 남로당 소속 300여명의 무장대가 한라산에 봉화를 올리고서 전개하는 무장투쟁도 있었다. 국군과 서북청년단이 민간인을 어떻게 학살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한국사회의 금기였고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이 무장대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나에게만 잊혀져 있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지우려 애쓰고 잊어버린 사람들인 게다. 영화에서 스쳐 지나는 대사 속에 무장대가 등장한 것이지만, 내 호기심은 그 무장대에게로 흠씬 옮겨갔다.

요 근래 ‘이현상 평전’을 읽고서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눈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평전을 읽기 전에도 빨치산 투쟁을 알고야 있었지만, 난 어려서부터 배워온 대로 빨치산과 무장간첩을 한 묶음으로 바라봤다. 좀 다르게 생각한대봐야 냉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휘말려 희생당한 사람들 정도였을 뿐이다. 그 이들이 어떤 고민을 품었고, 왜 산으로 들어갔는지, 들어가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 사람들을 주체로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제주도의 무장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커다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고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수레바퀴를 움직이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작년에 여행을 다니던 중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서 만난 한 러시아인과 남/북한에 대해 얘기 나누는데, 이 사람은 한국전쟁을 ‘Revolution War’(남한에서 ‘625전쟁’이라고 부르듯이)라고 표현했다. 듣고서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느낌표와 물음표가 떠다녔다.

나에겐 요즘 ‘인간다움’이 가장 큰 화두다. 진정한 ‘인간다움’은 어떤 고통이 다가올지 알면서도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닐까. 먼 옛날 십자가에 매달린 어떤 이가 그랬던 것처럼, 엄혹한 시기에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을 던진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리고 지금도 곳곳에 있는 그 이들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비극적인 역사를 다시 꺼내는 방식이 대개 불가항력적인 거대한 폭력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아닌지(물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볼온시되곤 하고, 위로도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도 그런 위로의 한 토막이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맞서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1948년, 한라산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그 무장대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을까? 왜 무장투쟁을 선택했을까? 영화 ‘지슬’을 보고나서 나에게 던져진 질문과 숙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