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오이가 계속 나오는 것이 평화
해군기지가 침범해선 안 되는 강정의 평화와 풍요로움
미정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제주도 남쪽, 강정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볼 수 있는 참 조용한 시골마을이라는 게 처음 들었던 느낌이었다. 마을은 깨끗했고 도로나 주택들도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처음 들어간 곳은 평화센터였고, 센터 안에는 여러 종류의 팸플릿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경찰과 용역들의 불법채증에 대한 대응방법이 소개된 한 장짜리 유인물이었다. 그 내용을 읽으면서 한적한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부터 본격적으로 강정마을에서의 하루가 시작 되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공사현장 주변 곳곳에 불법행위인 해군기지 공사상황을 감시하고 저지하기 위한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공간이 있었다. 그 중에 한 곳이었던 해군기지 건설현장을 볼 수 있는 중덕삼거리의 망루에 올라가게 되었다.
위태로운 망루에 올라가 조심스레 앉아 살짝만 고개를 돌리면 눈이 쌓여있는 한라산이 보이고 정말 예쁘고 멋진 광경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 공사현장이 그것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진행되는 공사현장에는 강정마을 앞바다에 투하될 수많은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들이 보였고 작업을 하는 배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자연이 훼손되고 바다가 오염되고 있는데도 해군이 죄책감도 없이 불법 공사를 진행되고 있다니 정말 가슴이 쓰렸다.
마을 곳곳을 돌다가 공사현장 곳곳에서 불법적인 공사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입구 앞에서는 생명평화를 기원하고 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한 릴레이 3만 배를 주민들과 강정지킴이들이 올리고 있었다. 3만배를 쉬는 사이에는 공사현장 입구에서 천주교 성직자들과 주민, 지킴이들이 매일 같이 미사를 드리고 있어 잠시나마 자리에 함께 하기도 했다.
해군기지 공사현장에 막혀있지만 강정마을은 지나가는 올레길이 있다는 것을 마을을 돌며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방문객들이나 관광객들의 왕래가 꽤 빈번했다. 그들 중에서 동참하여 릴레이 생명평화 3만배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관심과 지지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초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없었다면 제주도 올레길의 아름다움을 거리낌 없이 만끽하고 갔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정마을에서 어렵고 힘든 모습만 보고 온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이 매우 신성시 한다는 냇길이소를 가게 되는 행운이 있었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강정마을 인근에서 솟아오르며 천연폭포를 만들고 작은 호수를 형성한 곳이라고 했다. 안내를 받아 조심스럽게 냇길이소에 도착해서 서있자니 천상의 세계가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아름다운 장소였다.
냇길이소 옆에 있는 성황당나무도 같이 볼 수 있었다. 마을주민들이 기원 할 일이 있을 때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나무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나무줄기를 계속 보고 있자니 끝도 없이 고개가 따라 올라갈 정도로 나무줄기가 퍼져간다.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이러한 보석 같은 환경 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보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강정마을이 참 풍요롭다는 생각을 했다. 토양은 비옥하고 물도 풍부하여 거기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들은 달고 맛있다. 강정에서 맛본 귤은 정말 맛있었고 야채들은 상큼함은 기본이고 단맛이 나기까지 했다. 특히 강정마을의 오이 맛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제주도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아름답고 평안한 느낌이었는데 강정마을은 거기에 풍요로움까지 가지고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평화의 섬 제주도와 강정마을은 그 자체로 아껴야 하는 우리의 자연이지 우리가 제멋대로 통치하고 해군기지 공사처럼 마음대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짧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강정마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맛있는 과일과 야채들을 맛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을 보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들었다. 노력으로 흘린 땀과 정직한 땅이 보내주는 풍요로움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평화이지 않을까. 비록 몸은 멀리있지만 강정마을이 다시금 평화를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 이글은 <참소리> 기획기사에도 실렸습니다.
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102&item=&no=12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