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더군다나 인권은 없다!
학생생활기록부 학교폭력 기재 강요, 무엇이 어디까지 문제인가?
김정훈(전교조전북지부장)
교과부는 완고하다. 아니 무엇에 홀린 듯하다. 정권말기적 증상치고는 좀 희귀한 연출을 하고 있다. 교과부는 교육을 담당하는 부처임을 망각하고 법적 근거도 없이 학교에 대한 폭력적인 방침을 바꿀 생각이 없음을 지속적으로 공언하며 실행하고 있다.
학생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학교폭력을 기록하라는 교과부의 지침은 스스로가 연출한 여론몰이에 근거하여 진행되었다. 지난 해 말에 발생되었던 대구의 학교폭력 사건은 올해 내내 교육계를 학교폭력에 대한 화두로 내몰았다. 피해자/가해자라는 단순 도식을 적용한 교과부의 해법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았다. 학생생활지도를 담당하는 교사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강화, 학교 현실을 외면한 무조건적인 체육수업 확대 그리고 학생부에 학교폭력사실 기재가 그것이다. 이러한 교과부의 방침은 학교폭력 가해자를 성인 기준의 폭력사범이나 마찬가지로 대하겠다는 강경한 의사표시였다. 이는 피해자와 피해자 학부모 그리고 일반 국민여론의 학교폭력에 대한 우려 그리고 분노를 이용한 대증적인 처방에 불과한 것이다.
학교폭력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 학생 청소년에게 미치는 문제의 심각성과 사회적 파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여 해결의 열쇠를 찾느냐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접근 방법’의 문제다. 교육과 인권의 프리즘으로 학교폭력을 바라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인권교육의 현실화, 학교폭력 발생 당시 피해자 우선주의에 입각한 조사, 피해학생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한 치유와 배려 프로그램의 실시는 당연한 전제이다. 그리고 가해학생을 학교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그에 알맞은 처방을 내리는 것이 교육과 인권이 조화된 정책이다. 교과부의 대책은 이를 앞장서서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책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는 교과부가 이미 9년 전에 금지했던 사안이다. 당시 교육부는 네이스 상의 학생부에 ‘선도학생관리기록’을 입력하라고 했다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헌법과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위배된다는 시정권고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인권침해소지가 있는 항목에 대해 기재를 금지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주호 교과부장관은 지난 6월 29일의 ‘학생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훈령에 기대어 학생부 기재를 강압하고 나선 것이다. 학생의 한두 번 실수가 평생의 낙인이 되는 학생부 기재 지침은 학생과 학교에 대한 교과부의 폭력이다.
학교는 전인적인 발달의 공간이다. 학생은 공교육 안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자라난다. 그런데 학생부는 공식기록이다. 성인의 전과기록도 말소되는 세상에서 학생들의 기록을 졸업 후 5년씩이나 보관하라는 교과부의 지침은 학교교육을 부정하라는 것과 같다. 그것도 대학입시에 반영하거나 향후 진로에까지 영향을 주도록 한 것은 학생과 학교교육을 상대로 한 협박이고 극약처방격 이라 할수 있다. ‘거세’와 ‘배제’라는 폭력적인 주문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하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교과부의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교과부의 학교폭력 학생부기재 지침에 대해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은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위반, 개인 인권의 제한 또는 침해에 관련한 헌법 위배, 상위법률 부재 과잉금지원칙, 이중처벌금지원칙 등의 법률적 견해에 따른 거부의사를 밝혔다. 즉 교과부가 훈령에 의지해 초법적인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지난 8월 말부터 전라북도교육청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처음 일주일과 2번의 연장, 도합 20일이 넘는 기간에 고3 기재 대상 학교에서 교사, 교감, 교장에 대한 징계 협박과 회유가 있었다. 또한 대상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대입수시의 불이익을 공언했다. 도교육청에 대한 시정명령과 담당자들에 대한 징계협박도 있었다. 심지어는 교과부 차관이 직접 방문하여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라북도교육청과 전라북도 교육운동 주체들은 교과부의 폭력적인 협박에 굴하지 않았다.
전북의 교육단체, 인권시민단체, 학부모단체들은 이 기간동안 교과부가 반인권교육적인 학생부기재 강요에 대해 이주호 징관, 교과부 1차관에 대한 추적 시위를 포함한 피켓팅, 항의 행동 등으로 맞섰다.
학교폭력 생활기록부 기재가 교육감의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교과부는 해당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 방침을 지금까지도 굽히지 않고 있다. 결국 법정공방으로 갈 것인지는 최종적으로 교과부의 선택에 달려있다. 대학입시를 위임받은 대교협도 교과부의 허수아비가 되어 학폭기재와 관련하여 춤추기에 바빴다. 교과부의 지침이 위법한 점을 알면서도 부화뇌동한 것이다. 결국 현행 대입은 학생들을 ‘걸러내는 장치’ 즉 배제의 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대교협이 확인해준 셈이기도 하다. 우리교육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대한 상당부분의 책임이 그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담벼락에 친구 비방 낙서를 한 것으로 받은 서면사과 징계가 기록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8월말까지 올해 초등생에게 빨간줄이 그어진 학생이 102명이다. 중고등학교 합치면 서울 전체가 3053명이다. 단순 말다툼에서 비롯된 사안도 학교폭력 사안이고 기록에 남는다. 상담과 추후지도는 별무소용이다. 타시도 학생부장은 학교폭력 기재 지침이후 ‘아이들이 가해 사실을 시인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지었다. 또한 피해-가해 학부모 사이의 부당한 협상이 일을 더욱 꼬이게 한다고도 했다. 개인의 인권에 대한 침해를 넘어서서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까지 이식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학생부 기재와 관련해 합헌을 주장하는 헌법학자를 한 명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교과부의 학생부 학교폭력 기재방침은 결국 철회될 것이다.
교과부가 힘없는 학교에 학교폭력의 책임을 떠넘기는 무임승차 정책이 폭력을 불러온 것이라는 것도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학교폭력 대책은 미시적이나마 과대 과밀학급 해소, 치유-치료프로그램의 실질화와 같은 교육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과제는 남는다. 곽노현교육감 대법 판결뒤 곧바로 후퇴하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교과부의 간접체벌 허용 논란, 전북학생인권조례의 표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일방적인 사회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이면에는 한국사회의 폭력적인 구조가 있다. 또 그 밑바탕에는 정글경쟁교육이라는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입시와 경쟁이 교육을 집어삼킨 사회는 곧 ‘돈(자본)’이라는 물신이 지배한 불평등한 사회이다. 그 안에 학교가 있고 학교폭력이 있다. 학교폭력이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히 없어지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예방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학교공동체가 피해-가해 관계를 넘어서는 교육공동체로 기능하게 할 것인가를 살펴볼 일이다. 그 상호이해의 중심에 인권의 가치가 있다. 그것을 이루려면 이 낡은 틀을 한꺼번에 바꾸는 교육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로부터 학교혁명, 교실혁명에 이르기까지.
* 김정훈님은
남원중학교에 소속된 과학선생님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