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전교조 전북지부>
교사인권 없이 학생인권 보장? 어불성설이다.
- 전북교육청은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를 철회해야 한다.
채민(상임활동가)
5월 24일, 김승환 교육감은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의 노병섭 전 지부장과 두 교사에게 내려진 해임 및 정직결정에 대해 최종 결재를 했다. 진보교육감으로 일컬어지던 김 교육감의 이 같은 결정에 많은 이들이 분노와 허탈감을 표했다.
후퇴되는 민주주의에 대해 걱정하고 정부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보장에 노력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2009년의 교사시국선언은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선언에 참가한 교사 일부는 검찰로부터 교원노조법 및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기본법 위반 혐의로 기소가 됐다. 때를 같이해 교육과학기술부는 각 교육청에 시국선언 교사들을 징계할 것을 강요했다.
전북교육청 역시 징계위를 열어 시국선언 관련 교사들에 대한 징계절차에 착수했고, 2009년 12월 23일 노병섭 전 지부장과 두 교사에게 각각 해임과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릴 것을 의결했다. 2010년 1월 29일 전주지법이 교사들의 시국선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징계 결정은 연기되었지만 같은 해 7월과 올해 5월 24일에 열림 항소심과 상고심 판결에서 50만원 벌금형이 내려져 29일부터 징계가 발효됐다.
그렇게 시국선언으로부터 3년이 흘러 결국 교사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학교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 법이 인권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가치를 훼손시킨 것이다.
누구나 말 할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
2010년 5월 방한한 프랭크 라뤼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해 조사를 하며, 교사들의 시국선언 탄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또 방문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교사들이 개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특히 그와 같은 권리가 교육정책과 같은 공익적 사안과 관련 공무 외에 행사되는 경우,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물론 이런 권고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이 주되게 언급하는 것이 교사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중립성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전교조에 대한 이런 공격들에 근거가 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개념은 원래 ‘교육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뜻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 유겐트’ 같은 것들에 대한 끔찍한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개념이다. 교사들이 정치권력의 탄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지, 교사들이 자기 신념에 따라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막으려는 게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청소년 인권활동가 공현, ‘지금 전교조에 대한 탄압은 청소년들에 대한 모욕’ 중에서 수정인용)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교사의 입을 막고 목을 죄는 꼴이 되었다.
미성숙한 학생들을 물들이는 교사?
나는 시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침해했다는 분노와 함께 또 다른 불편함을 느낀다.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징계가 가장 약자인 학생의 인권을 억누르는 학교 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해놨건만, 우리 사회는 유독 교사들에게만은 ‘닥치고 수업’을 강요한다. 왜 그런 걸까. 왜 이들을 ‘정치적 금치산자’로 만드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학생은 미성숙한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순수한 정보만을 교육해야한다’는 생각들이 똬리 틀고 있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 ‘순수한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시국선언 같은 것이나 하는 ‘위험분자’들을 다 몰아내자는 이야기가 뒤따른다. 조선일보가 학생인권조례운동을 비난하며 학생들을 ‘촛불 홍위병 키워보겠다는 건가’라는 사설은 제목부터 그러한 생각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정말 학생은 철없는 미성숙한 존재인가, 아니면 미성숙하도록 강요받는 존재인가.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가정한다면 교사가 지시하는 것만 그대로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참여의 기회는 그 정도의 선에서 그치게 된다. 다양한 참여를 통해 실수할 기회와 고민할 기회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성숙할 기회를 잃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욱 무지하고 미성숙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생인권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주체들은 애초부터 학생이 미성숙한 게 아니라 학교와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미성숙해질 것을 강요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수세력과 정부는 학생이 미성숙해지도록 강요하는 이러한 학교 구조를 유지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교사에게 끊임없이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이 교권의 전부인 마냥 이야기하며, 정작 표현의 자유, 노동의 권리에 대해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보면 ‘학생은 미성숙하다’라는 담론이 학생만이 아니라 교사들의 인권마저 옭아매고 있다. 당연히 지금의 학교 구조에서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권리도 교사들처럼 무시되고 억압당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같은 인간임에도 교사가 지금도 누리는 것보다 더 못한 기준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