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칼럼] 머리 염색 금지?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송기춘교수


초․중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신경을 많이 쓰는 사항 가운데 하나가 학생들의 머리 염색입니다. 멋있어 보이는 머리 모양과 색깔을 하고 싶은 학생과 ‘학생다운’ ‘단정한’ 용모를 요구하는 선생님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방학을 하면 바로 미용실로 달려가 원하는 헤어스타일과 염색을 하고 방학이 끝나는 날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미용실에 가서 검은 색으로 머리 ‘염색’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멋의 기준을 정해주고 이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멋을 내고 싶은 나이의 학생과 학생다움을 요구하는 선생님 사이에 학생다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큰 것도 갈등의 원인입니다. 학부모와 사회 구성원 역시 선생님과 같은 견해를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은 역시 학생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과 시행을 둘러싸고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에서 한 도 의원은 작년 학생인권조례를 부결시킨 이유의 하나로 복장이나 머리 길이 등을 학생들 자율로 정하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보지만 머리 염색까지 하는 것은 도저히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례(안)을 반대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말인즉슨 옷을 어떻게 입느냐도 머리가 길어도 큰 문제는 아닌데 머리를 울긋불긋 염색하면 학교 분위기나 다른 학생들 공부하는 데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선 복장과 머리 길이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유독 머리 색깔만 달리 봐야 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당사자의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 말고 제시된 이유는 없습니다. 적어도 염색약이 독성이 있어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이 사용할 경우 성인들이 사용할 때보다 해가 많다는 이유 정도는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럴 경우 광고하는 것처럼 천연원료로 만들어 신체에 해가 없다는 증명이 있는 제품을 사용하면 되는데 염색재료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염색약에 따라 염색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번거롭고 일일이 이를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염색약에 좋고 나쁜 게 있는 것이라면, 약도 어린이용이 따로 있는 것처럼 청소년용 염색약을 따로 만들 경우 또는 학생 스스로 신체에 해가 없다는 염색약을 선택할 경우 학교 선생님들이 염색을 금지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하자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의 문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염색약이 어느 정도의 독성이 있는지 입증되었다면 이런 약품의 사용에 대해서는 법률로 규정하여야 할 일입니다. 즉, 독성에 대한 규제는 해를 막는다는 면에서 가능하지만 그것이 염색 자체를 막는 이유는 안 됩니다.

염색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염색을 하면 학교 분위기를 해친다는 것입니다.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머리를 한 학생들이 모여 공부가 되겠느냐는 걱정이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학생들이 염색을 할 수 있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하여 그게 무슨 문제가 될 것이며, 공부하는 데 무슨 영향이 있을까요. 그게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참아야 하는 불편함이고, 서로 대화를 통하여 해결할 문제입니다. 나아가 이런 풍경이 언제나 펼쳐진다고만도 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 스스로 토론을 통하여 염색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면 매우 합리적인 이유로 스스로가 동의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 자율적으로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염색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간이 없어서 염색하기 어렵고 한 두 번 해 보면 돈 아까워서 자주 하지도 않습니다. 엄격하게 금지하니까 더 해보고 싶은 것 아닐까요? 그래도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개성을 나타내고 싶은 학생은 하겠지요. 이런 학생들은 장차 헤어드레서나 미술가로 대성할지도 모릅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염색금지의 바탕에는 머리는 까만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입니다. 염색금지를 달리 표현하자면 원래의 머리색에 변경을 가하지 말라는 것인데, 사람마다 머리색이 다르다면 드러난 머리색이 자기 고유의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 친구 하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머리가 원래 노란색이어서 선생님들에게 애꿎은 벌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염색했다는 혐의지요. 이제 다문화사회가 펼쳐지고 있고 머리색도 다양하게 될 텐데, 머리색을 굳이 ‘자신이 가진 그 색깔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송기춘 교수님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 이 글은 단체소식지 '평화와인권' 4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