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단결을 금지한 노동법 - <<인권을 외치다>>를 읽으며
채민(상임활동가)
전북평화와인권연대에서는 요즘 류은숙 씨가 쓴 《인권을 외치다》를 함께 읽고 있다. 《인권을 외치다》는 인권의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나왔던 선언과 법, 국제규약들이 실려있고 이것들을 읽으며 우리 시대 인권이 어디쯤 있는 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그 중에서도 지난 6월 14일에 읽었던 <르 샤플리에법>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209년 전 6월 14일은 <르 샤플리에법>이 당시 프랑스 의회에 제출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은 아니었다. <르 샤플리에법>은 노동법이지만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한 노동법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을 금지한 노동법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법이 생겨났을까.
자유로운 개인, 단결의 금지
왕과 귀족 중심의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든 프랑스 혁명이 있은 지 2년이 흐르고 1791년의 봄, 파리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모여들었다.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한 목소리로 고용주들에게 임금 협상을 하자고 제안한다. 본격적인 산업 시대가 되면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늘고 사회적인 부가 많아졌으니 노동자들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고용주들은 개인들 간의 경쟁으로 서로 이익이 자연스럽게 정해질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집회를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더 나아가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 것을 의회에 요구한다. 이에 변호사이자 프랑스 대혁명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르 샤플리에 의원은 노동자들의 단결은 왕과 귀족들의 시대에나 있던 낡은 체제의 찌꺼기이며 임금 결정은 개인의 자유로운 합의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모든 직업적 결사와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것이 <르 샤플리에법>이었다.
노동자만 처벌했던 르 사플리에법
<르 샤플리에법>이 노동자들의 단결만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직업적 결사와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게 법의 취지이니 고용주들의 단결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고 하는 것처럼 진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르 샤플리에법>은 19세기에 고용주들에게 한번도 적용되지 않았다. 반면 노동자들의 단결 시도는 계속됐지만 그때마다 가혹하게 탄압받았다고 한다. <르 샤플리에법> 7조와 8조는 단결을 주장하고 도모하는 사람에 대해 경우에 따라서 최대한도의 처벌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처벌이 1864년까지 시행되었으니 단결을 하려했다는 이유로 감옥으로 보내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간 노동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와 평등은 모두의 자유와 평등은 아니었다는 것이 곧바로 드러난 셈이다.
평등 없는 자유는 허구, 자유 없이 평등을 쟁취하기는 어려워
노동자들에게 단결의 자유가 왜 고용주들보다 더 절실했는지는 너무나 당연하다. 가진 것은 자신의 노동력 밖에 없는 상황에서 힘과 돈을 가진 고용주들과의 계약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비롯한 불리한 사항을 모두 받아들여야 했다. 르 샤플리에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합의는 현실과는 떨어진 환상적인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결국 평등 없는 자유는 허구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단결을 비롯한 파업 등의 권리를 행사할 ‘자유’ 없이 평등을 쟁취하는 것도 너무나 먼 일이었다. 차츰 노동자들은 구체제가 사라지면서 자본가들과 자신들 사이에 존재하는 착취와 불평등한 관계를 직시하게 되었다. 19세기 내내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시 당국과 자본가들과 맞서 권리를 위해 봉기와 항쟁을 계속하게 된다. 한편 정부와 자본가들 역시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막대한 이윤과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그 중의 극히 일부분을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임금이나 권리를 들어주기 위해 양보해줄 수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비로소 1864년 단결에 대한 형벌이 금지되었고 1884년에는 노동조합을 법률로서 인정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단결에 대한 처벌금지라는 소극적 조치에서 노동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꾸게 된다.
지금도 특정 계급의 이익에 가로막힌 노동자들의 인권
현대에 와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금지하는 법조문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법조문만큼이나 우리의 인권도 함께 오게 되었을까. 《인권을 외치다》에서 류은숙 씨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오늘날에도 ‘르 샤플리에’ 의원이 너무 많고 노동자에 대한 압박과 처벌을 청원하는 자들 또한 넘쳐흐른다. (…) 단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노동 기본권을 위한 연대를 갈구 하고 있다. (…) <르 샤플리에 법> 사라진 지 백여 년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법이 정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성실히 지키고 파업을 해도 결국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은 철도 노동자들의 소식을 오늘 접했다. 태어나자마자 특정 계급의 이익에 갇혀야했던 인권과 자유와 평등은 어쩌면 같은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단결을 위한 노동자들의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인권의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 시대 인권을 다시 고민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