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백조 - 한일노동자연대 20주년 기념 행사를 마치고
마후라(전북남녀노소노가바립씽크재활용락밴드 질러 멤바)
전북-오사카 노동자교류 20주년 행사가 3월 14일에 익산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다.
아세아스와니투쟁 20주년 기념이기도 하다. 질러에서는 그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서 연극으로 꾸몄다. 이 연극을 하게 된 계기는 새로운 신입단원의 데뷔무대를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다. 마침 신입단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라고 하면서 하자고 선뜻 나섰다.
이틀 만에 대본이 나오고 2주 동안 총 6번 연습을 했다. 2주 만에 대사를 다 외우는 건 혼또니(정말로) 무리였다. 그래서 립싱크하기로 했다. 녹음과 의상, 소품을 준비하고 익산으로 향했다.
20주년 아세아스와니 투쟁의 주인공들도 온다는 얘길 들었다. 당사자들 직접 보니까 떨렸다. 저 언니들이 일본 관서지역을 100일 동안 들었다 놓았던 언니들이구나. 그 짜디짠 스와니 사장 미요시로부터 1억3천5백 만 원을 삥 뜯어 온 언니들이구나. 오줌을 찍 쌌다. 질러의 다른 단원들은 그 언니들이 왔다는 걸 모른 체 저급 코미디를 구사하며 사람들을 웃기는 데만 열중했다.
질러에서 활동을 한 지 4년째 정기공연, 초청공연 다 합해서 수십 번을 함께했지만 이번처럼 민망한 적은 없었다. 그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무대뽀 정신으로 버텨왔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질러사람들이 부끄러웠다. 대사라도 다 외울 걸, 립싱크 하기로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립싱크가 웬 말이냐! 아세아스와니가 심심풀이 땅콩이냐! 실수라도 하면 우리에게 퍼부을 듯 쳐다보는 늙은 여우들, 난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어차피 난 대사도 별로 없잖아. 무대에 오르니 사람들이 다 보인다. 저기 중앙에 둘째 줄 아세아스와니 노조위원장의 얼굴까지 다 보인다.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인트로로 난타를 선보였다. 중간까지는 박자 맞춰 잘 하다가 체를 놓쳐버렸다. 워메메 안타깝게도 난타는 립싱크가 아니었다. 다음 등장한 변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대사를 읊는다.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어 사계가 울려 퍼지면서 미싱부, 재단부 등장. 원정 투쟁단 5인방이 나오는 장면에서 별 대화도 없는데 저기 중앙에 둘째 줄에 아세아스와니 언니들 괜히 실실 웃기 시작한다. 웃다 울다 아! 저 언니들도 사람이구나. 따뜻한 사람들이구나.
첫무대에 선 신입단원 소정이는 관객들 반응 진짜 끝내준다고 하면서 좋아 죽는다. 소정아 우리가 맨 날 이렇게 반응이 좋은 건 아니란다. 월드컵도 재밌지만 동네축구도 재밌잖니. 왠쥐~ 일본에 공연초청을 받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자, 질러가 해외공연을 이꾸까 이까나이까 와까라나이(갈까 안갈까 모르겠네~).
추신: 이 연극의 감상 포인트는 관객들의 연기이다. 관객들은 무대 위의 사람이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무대 위의 사람들은 관객들의 연기를 본다. 이 둘의 호흡으로 하나의 공연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