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시 2>를 보고

설영(전북평화와인권연대 소식지팀)

2003년을 진보운동진영에서는 ‘열사정국’이라고 흔히 부르곤 한다. 그만큼 많은 노동자와 농민들이 2003년에 삶을 등지고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열사의 삶을 택한 그들의 등을 떠밀었던 2003년은 ‘참여정부’라고 지칭되는 노무현정부의 원년이었다. 보수에 의해 좌파정권이라 규정지어진 노무현정부의 첫 해, 한국사회는 새만금개발과 쌀 개방,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법 등으로 좌/우, 정권과 민중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송두율이라는 재독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또 다른 마녀사냥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0년 개봉하는 경계도시2는 바로 당시 약 3주간의 일정을 예정으로 고국 땅을 밟게 된 송두율 교수의 1년 체류기를 기록한 영화이다. 37년 간 경계인으로 살아한 학자의 눈에 비치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감독은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벗어나보지 못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당초의 질문은 던지지도 못한 채 빗발치는 보수와 언론의 공세에 무기력해지는 한 학자의 모습을 담는데 카메라는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경계인 송두율 교수에게는 건국 이래 최대의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북한과 항시적 전시체계 속에서 노동당은 서구의 공산당과 같은 수 없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송두율 교수의 문제로 야만의 광기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화자의 말처럼 한국사회에서 남북분단의 문제는 모든 논리와 사고를 거부한다. 그래서 송두율 교수의 노동당입당과 방북의 문제는 토론과 논의의 문제가 아니라 형량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치열하게 송두율 교수에게 답을 강요한다.

‘당신은 노동당정치국 후보위원, 북한 서열 23위 김철수가 맞습니까?’

그래서 송두율 교수 부인의 ‘한국사회는 경계인의 삶을 산 송두율 교수를 죄인취급하고 받아주지 않았지만, 북한은 교류가 가능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과 의문은 갖지 않고 무조건 사과하라고 하느냐’라는 문제제기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았다. 그리고 ‘양심적 학자에서 거물간첩으로 추락하기까지 남북을 하나로 묶고 경계인으로서 디딤돌이 되고자 했던 것이 물거품’이 된 학자의 외침에 진보진영은 ‘경계인’과 같은 원칙과 논리, 진정성은 무시하고 테크니컬을 요구한다. 거듭되는 답에 대한 강요와 형량의 문제로 인해서일까? 영화 속 많은 주변인들은 송두율 교수의 문제에 훈수를 두려한다. 한수 앞을 내다보고 장기판에 개입하는 훈수는 장기의 또 다른 묘미이겠지만, 경계도시2에 등장하는 훈수는 송두율 교수의 임박한 파국이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자기방어적인 표현의 하나였다.

테크니컬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노동당 탈당과, 한국 실정법 준수, 독일국적포기와 같은 최종 패는 이러한 훈수와 설득 속에서 차악도 아닌 최악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당시 한국사회가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답을 원했기 보다는 경계인이 아니라 남북대결국면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또 영원히 그 국면에서 남한의 편임을 선언하라는 백기투항을 원했던 것이다.

‘한쪽을 택하라. 당신은 경계인이 아니다. 노동당원이다.’

‘강고한 국가보안법 앞에서, 양자택일 강요하는 좌우이데올로기, 보수와 진보의 권력투쟁 앞에서, 기득권에 기생하는 언론의 광기 앞에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운동 앞에서, 무엇보다 이것들을 관통하는 레드컴플렉스에 막강한 위력 앞에서 한국사회는 자신의 실체를 드러냈다.’

그 실체와 대면하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늦잠을 자고 거울 속 부은 얼굴을 대면해야하는 불편함처럼, 보는 내내 부끄러움을 한 다발 안겨주었던 영화 경계도시2. 그 부끄러움은 우리 자신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2003년 송두율 교수는 스파이였다. 2010년 지금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송두율 사건은 사라졌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역시 그와 함께 다시 미궁 속으로 빠졌다. 그러나 종종 뉴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국가보안법은 또 다른 송두율 교수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과연 그때 한국사회는 어떤 대응을 할까?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