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인권교육에 대해 말하다. 인권 VS 예의
풍경(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
올해는 지역아동센터나 방과후 공부방에서 인권교육 요청이 끊이지 않은 해였다. 우리는 인권교육 요청이 들어오면 대상자들에게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정리해달라고 다시 요청 드린다. 그러면 대부분 공부방 선생님들이 하는 말 중 몇 가지를 뽑아보면 “우리 아이들이 예의가 없어요.”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해요.” “자기 권리만 이야기해요” 등등의 내용들이다. 여기에 맞는 교육을 요청받으면 공부방 선생님들께서 인권을 예의바른 아이로 자라게 하는 인성교육으로 생각하고들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꼭 공부방 선생님들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어른들이 아동에게 필요한 교육이 인권인지, 예의인지 많이들 혼동하여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인권과 예의에 대해서 짧은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언니는 자기아이한테 예의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내가 불편하기까지 했는데, 아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엄마에게 심하게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다른 부모들 같았으면 벌써 한 대 맞고도 남았을 상황을 언니는 아이를 때리지 않고 안아주고만 있다. 나는 그 언니에게 애가 저렇게 버릇없이 굴 때는 때려주고 싶지 않냐고...물었고 그 언니는 애를 때릴 데가 어딨냐? 답했던 거 같다. 실제로 그 언니는 애가 어렸을 때 엉덩이 딱 한번만 때렸다고 한다. 아이를 9년 동안 키우면서 딱 한 번 때렸다니 보통 내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 언니 아이가 너무 자유분방하게 키워져 싸가지도 없고 자기밖에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싫은 감정을 표현할 때는 얄미웠지만, 자신이 평상심일 때는 오히려 엄마의 마음속도 깊게 이해하고, 주변 어른들과 어울리는데도 절대 기죽지 않는 당당함과 간혹 너무도 어른스러운 말들을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아이에 대한 오해가 풀림과 함께 왜 난 처음 본 그 애의 예의 없는 모습을 보고 그 애 전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이 짧게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모녀가 아닌 친구 같은 이 둘의 관계를 보고 어른과 어린아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리고 예의 대해서 잠깐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 한 가지는 TV를 보다 미국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온 아이가 인터뷰한 영상을 보게 됐는데, 한국에서 불편한 점이 뭐냐고 했더니.....호칭에 관한 거란다. 미국에서는 그냥 이름만 부르면 됐는데, 한국에 오니까 이름 뒤에 언니, 오빠라는 호칭을 붙여야 하는 게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그 아이의 말을 듣고 그러게 그냥 서로 이름만 부르면 편할텐데 왜 뒤에 높임 호칭을 붙여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어린 사람들한테는 뒤에 호칭을 붙이지 않잖아. 누구 언니야는 있지만 누구동생아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관계의 위계가 생기고, 위계가 바로 권력이 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아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듯하다. 아이 어른할 것 없이 서로 존중하면 될텐데 굳이 어른에게만 '공경'이라는 말까지 붙여진걸 보면 뭔가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아이만 어른에게 존대를 해야 하는 것인가? 서로 존대하고, 존중하면 아이는 스스로 배우게 되는데 말이다.
보통 어린이들은 예의가 없다는 이유로 자주 훈계를 듣거나 매를 맞는다. 왜 아이는 예의가 없다고 매를 맞고 훈계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어린아이한테 예의가 왜 필요할까? 어린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예의를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등 많은 물음이 꼬리를 문다.
예의는 무엇일까? 예의있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대부분이 예의는 사회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 기본 에티켓이라는 생각은 상식이다. 사실 구체적으로 따진다면 인권도 사람에 대한 예의를 권리의 언어로 풀어낸 것이기도 하다. 사람의 존엄함에 대한 외경을 갖고 존중하는 마음을 구체적인 행동규범으로 구체화한다면 그것은 인권이 말하는 예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말하는 예의는 사람들 사이의 동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기존의 예의개념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예의를 지키라고 할 때는 대부분 위아래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예의를 갖추어야 할 사람들은 주로 나이가 어린 사람, 여성, 후배 등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학생과 교사, 부모와 자녀, 선배와 후배, 직장상사와 부하 등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고, 복종도 함께 따를 때가 많다.
인권교육은 불의한 상황에서는 이런 권력관계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을 이야기 하면서 예의를 이야기 하는 것에는 단호히 선을 그어야 되지 않을까?
인권과 예의를 혼동하지 않는 것부터가 아동을 진정 권리주체로 인식하고 생활 속에서 아동들의 인권의식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