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회 시위 하는지 귀기울이고 있느냐"
<논평>집회 시위의 자유는 신성한 기본권이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집회․시위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어느 순간, 집회․시위 참가자들과 이를 막는 경찰이 맞붙는 모습을 보면 권리의 행사라든가 법의 집행과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의 적나나한 힘의 충돌로 보일 때도 있다.

지난 주 서울 지역 어느 경찰서 간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질문의 내용은 오늘 한명숙 총리가 앞으로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이를 모두 금지하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며, 민사상 손해배상도 묻겠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다.


'불법‘ ’폭력‘ 규정 집회 시위 금지, 군사독재정권때 써먹던 표현 아닌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랬다. 한명숙 총리의 그러한 입장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정권 담당자들이 써먹었던 표현과 똑같은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집회․시위가 왜 그렇게 잦아지고 격렬해지는지 그 근본원인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정부가 기울이고 있느냐, 정부가 그렇게 강경하게 나오면 집회․시위가 완화될 것 같으냐, 결국 강한 힘은 더 강한 힘을 불러오게 되어 있다, 라는 것이 내 답변이었다.

그랬더니 그는, 그렇다고 해서 과격한 집회․시위를 그대로 놓아두면 그것도 문제이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나는, 경찰이 개입하지 않는 집회․시위가 얼마나 과격해질 수 있는지 한 번 그대로 놓아두면 어떻겠느냐, 라고 주문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민주주의 질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권이기 때문에,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국가는 헌법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다.

얼마 전 어느 라디오 방송국 전화토론에서 진행자가 집회․시위를 굳이 도심에서 할 것이 아니라 변두리 한적한 곳에 가서 할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나는 집회․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집회․시위를 한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되물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실현해 나가는 힘(자기실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참여를 통해서 비로소 실현되는 헌법원리이다.

국민의 참여 형식 중 매우 중요하고 일상적인 것이 바론 ‘여론’이다. 여론은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형성된다. 헌법상 여론 형성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기본권이 집회․시위의 자유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개념상 공공의 안전과 질서와의 충돌이 예상되어 있는 기본권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상당한 범위 내에서는 집회․시위를 통하여 발생하는 공공의 안전과 질서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그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노동자의 정당한 노동쟁의를 통해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집회․시위의 장소를 어느 곳으로 할 것인가는 집회․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져 있다(장소선택의 자유). 한적한 곳에서 할 것인지, 아니면 일반인의 통행이 번잡한 도심에서 할 것인지에 관한 선택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장소선택의 자유는 집회․시위의 자유...도심지역 금지 위헌적 발상

집회․시위의 자유가 어떤 기본권인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의 목소리를 들어보자.집회의 자유는 집회를 통하여 형성된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통하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사에 영향을 줄 자유를 포함하므로 이를 내용으로 하는 시위의 자유 또한 집회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21조 제1항에 의하여 보호되는 기본권이다. 집회․시위장소는 집회․시위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회․시위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만 집회․시위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되므로 장소선택의 자유는 집회․시위의 자유의 한 실질을 형성한다.(헌법재판소 결정 2005. 11. 24. 2004헌가17 전원재판부)

위 헌법재판소 판례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도시라는 이유로, 또는 도심지역이라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헌이 된다. 따라서 최근 대도시 도심 지역을 집회․시위 금지구역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는 경찰청장의 발상은 그 자체로서 위헌적인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문제나 한미 FTA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집회․시위는 본질적으로 집회․시위 참가자들과 정부 사이의 의사소통의 부재, 그리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 여당, 국민과의 의사소통부재-신뢰 위기로 길거리로 내몰아



이 두 가지 중요한 국민적 관심사에 관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당력을 집중해서라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현재 집회․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난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열린우리당 후보들을 지지했던 세력이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그들 스스로 정치적 지지세력을 배척하고 방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들이 정작 배척했어야 할 대상은, 오로지 권력의 맛만을 노리고 청와대와 여당을 들락거리던 자들이었다.

한 때 국민들은 대통령과 여당을 신뢰했다. 대미관계에서 주권국가의 자존심을 갖추고, 대북관계에서 일관된 통일지향 정책을 수립․추진하며, 대내관계에서 국민의 삶의 차별을 철폐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신뢰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의 정책은 정치적 지지세력의 신뢰와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갔다.

대미종속성은 ‘할 말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전락했고, 대북관계에서는 수구보수 정당인 한나라당과의 색깔 차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으며, 국민들은 더욱 심한 양극화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계속 빠져나가는 지지율을 회복해 보고자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벌였던,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뉴딜 정책은 한 판의 코메디와 다름 없었다. 민주화운동의 열매를 입에 문 그가 고작 하는 일이, 경제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세력과의 야합이라면 열린우리당은 갈 데까지 가고 만 것이다.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양보 카드를 내면 한나라당이 최소한의 정치적 예의를 갖춰 줄 것으로 기대할 정도의 한심한 정치력을 보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한나라당은 이미 국리민복을 위한 당이라는 것을 포기했고, 오로지 대통령과 여당을 무력화시켜서 내년 대선에서 승리를 쟁취한다는 목적 밖에 없다. ‘파워 애니멀’(power animal) 그것이 한나라당의 정체성이다.


‘경찰력=군병력’ 군사독재정권 악습 현 정권에서도...시위현장 충돌 예견된 셈

현 시점에서 삶의 한계선으로 내몰리고 있는 계층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 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길은 대통령, 여당, 집회․시위 세력이 정치적 신뢰관계와 동질의식을 구축하는 것 밖에 없다. 경찰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건 정권담당자가 하라는 대로 하는 집단이다.

정책실패는 정권담당자들이 저질러놓고, 현장에서의 뒤치다꺼리는 경찰이 하는 폐습이 오랜 기간 진행되어 왔다. 집회․시위의 현장에 내몰리는 경찰력은 실질적으로는 군병력이다. 현역군복무를 대신하는 대체복무자들이기 때문이다. 연령상으로 볼 때 그들은 폭력성의 충동에 쉽게 노출되게 되어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폭력충돌은 이미 제도적으로 예견되어 있는 셈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악습을 현 정권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의사소통의 자유이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막히지 않을 때 해결의 실마리는 나타날 것이다. 정부․여당은 집회․시위 참가자들을 더 이상 적대시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