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사형제도 되묻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영화는 한 사형수와 어릴적 불행한 과거로 인해 자살기도 세 번의 경험이 있는 한 여교수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자세한 스토리와 영화상의 내용은 영화를 직접 관람하고 즐길 분들을 위해 여백으로 남겨 두려한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그동안 사형제도에 갖었던 문제의식을 한번 얘기해 보고 싶어진다.
감독의 의도야 다 알 순 없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분들은 아마도 사형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지 않을까.
영화라는 색체로 미화된 인물들의 순수성이 더 부각되는 것이 영화적 묘미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사형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 인가를.

사형 제도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이게끔 만드는 것 자체를 빼앗는 행위로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
존재가 사리지고 어찌 인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형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잔혹한 범죄를 예방한다는 이유를 댄다.
물론 아직까지 사형제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는 아직 이 같은 주장이 우세한 사회인 것 같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1700년대 중반부터 사형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 당시 범죄 억제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면서 근대 이후에는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세계 인권 선언과 2차 대전 이후 전문 연구가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UN의 1998년 사형에 관한 보고서에는 범죄 여부와 상관없다는 결론을 도출한 내용이 있다.
이미 캐나다에서는 1940년대에 폐지되었는데 그 이후 30%정도의 범죄 감소율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국제 엠네스티의 조사에 의하면 사형제 주도국이 범죄율이 높으며 반대로, 사형제 폐지국은 오히려 범죄율이 낮다고 한다.
이는 사회자체의 생명에 대한 인식과 존중, 인간 존엄에 대한 가치 판단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국제 엠네스티의 조사 내용에서 또 하나 사형제 폐지국이 이라크 전쟁 반대 의견이 높았다는 것을 보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해 볼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법적 살인이 존재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생명의 존엄성은 차이가 있다.

사형제 폐지국 중 하나인 프랑스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사형제를 폐지할 당시 최종 여론 설문조사에서 65:35라는 다수의 찬성 여론에도 불구하고 의회에서는 폐지 법안을 통과했다.
여론을 넘어 정당함을 관철하는 정치이념이 작동하는 국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전체 수적인 여론의 찬반여부를 넘어 이 사회가 공통으로 적용되어야 할 기본적 가치와 인권에 대한 의회 정치의 신념의 결과라 볼수 있다.  
의회는 결국 그동안의 통계와 결과, 연구를 통해서도 합당하지 않는 내용이란 것을 인정한 것이다.

사형제도의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고 싶다.
첫 번째는 오판의 우려다.
미국 롤스케롤라이나는 30년 정도 사형제가 존재했었다.
오판에 대해 재조사 결과 사형 집행된 것 중 반 이상이 오판이라는 보고서 결과가 나왔다.
법 시스템이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전제하는 상식중 하나이다.  
이는 분명히 사회적인 오판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일범죄에 있어서도 백인보다 흑인이 더 많다. 종교적 이유에서도 이슬람국가에서는 비이슬람인이 사형률이 더 많다. 또한 비민주적 국가일수록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
불안정한 이 사회 요건 속에서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결과인 것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도 이런 오판의 문제에 대해서 그려진다. 비록 가해자가 살인을 저지르긴 했지만, 실제 사실과는 다른 결과로 다시는 돌이킬수도 없이 진실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가해자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두 번째는 교도관의 인권 문제이다.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불신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형은 판사가 내리지만, 정작 집행은 판사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사과정과 법리과정에서 배제된 채 집행만은 전적으로 교도관의 몫이 된다.
사형수에 대한 교도관 수칙 중 사형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사형이후 1-2일 휴가 등을 준다고 한다. 또한 심한 음주 등의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영화에서도 교도관들의 고뇌가 잠깐 비춰지기도 한다.
심지어 교도관 자신만이 아니라 교도관 가정에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심한 자책과 함께, 10년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점을 쳤더니 아버지가 피를 묻히는 직업이라 아이가 무서워서 그런다는 영화안의 상황이 그대로 현실을 얘기하는 것만 같다.  

세 번째는 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의 문제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사회적 요인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에 대해 사회적 책임으로 범죄 행위 자체가 용인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범죄가 재발되지 않고, 이 사회가 진정으로 안전하고, 서로 믿고 사는 세상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노력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제소자들의 조건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빈곤층, 저속득층, 소외층 등이 많다.
소외와 차별, 가난으로부터의 희생자로서 사회적 책임이 필요한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수감자는 응징의 대상이 아니라 교화시켜 사회로 환원시켜야 할 사람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형은 모든 기회를 박탈하고 인간이 인간의 가능성을 완전히 져버리는 가장 극단적인 비인간적 처방이자 법적 살인행위다.

사형제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사형제는 문제라 생각되지만, 유영철 같은 사람을 보면 절대 용서할 수 없고, 그런 사람들 때문이라도 사형제는 유지되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본다.
내가 그 피해자이고, 그 피해자의 가족이라 했을 경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분명히 영화다. 그렇지만, 그것은 분명히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을 그리고 있다. 살해당한 피해자의 어머니가 피눈물 나고 억장이 무너져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어머니는 끝내 그 가해자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죽이고, 네가 죽어 내 딸이 살아 돌아올수만 있다면 내 천번이고 그렇게 하겠지만, 그게 아니란걸 안다”라며 비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결국 그 가해자를 용서한다라는 말을 한다.
그 어머니 앞에 그 가해자는 통곡하며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울부짖는다.

돌이켜 보면 유영철 같은 인간은 온전한 정신을 갖은 인간이라 볼 수 없다.
그런 정신이상 범죄자에게 필요한게 무엇일까.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한다.
치료받은자 중 재범율이 20~30%다. 받지 않은자는 재범율이 70~80%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어떤식으로 처벌하고 교화하고 교육할 것인가에 대해 이 사회가 제대로 토론한번 해본 적 있었는가.
우리 사회가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를 묻고 싶다.
범죄 양상이 극악무도해지고, 범죄율이 높아가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중의 가치가 무너지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 때문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권의식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실천과 노력이다. 그것의 가장 일차적 실천은 사형제 폐지이다. 국가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야 말로 가장 극악한 반인권 행위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