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중항쟁 23주기를 맞는다. 항쟁의 의미는 해가 거듭할수록 새롭게 조명되어왔다. 특히 5·18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그후 남한에서 반미투쟁을 본격화사키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 82년 부산 미문화원방화투쟁과 88년 조성만 열사의 할복투쟁 등 일련의 반미투쟁을 통해 한국 민중들은 5·18 당시 미국의 역할을 폭로해나갔다. 급기야 96년 공개된 극비문서는 5·18 당시 미국이 특전사의 광주투입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묵인했으며 광주 무력진압에 대해 '지지'를 결정하는 등 광주 학살을 '방조·승인'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현재 우리 민중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절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는 매우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선 북핵폐기'를 주장하는 대북적대정책을 계속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고, '예방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주권 국가에 대한 선제공격을 정당화하고 있다. 가까운 군산미군기지에서는 3월말 한미 연합 군사훈련차 임시 배치된 F-117 스텔스 전폭기 6대가 아직도 뜨고내리는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전쟁은 우리 민중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생각만해도 끔찍한 현실이다. 비단 전쟁 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전쟁 위협도 민중의 삶을 옥죄어오기는 매한가지다. 전쟁 위협 앞에서는 어떠한 권리 주장도 무색해지고 만다. 문제는 그와 같은 대재앙의 목전에서 정부가 취하는 태도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외교 정책을 과거 냉전수구세력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반미감정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기 위해 안달하는 종속적 태도는 사실상 인권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촛불시위 자제, 반미를 동반하는 반전시위 자제, 전교조 반전교육 실태를 조사하라는 지시 들은 국민의 알 권리와 평화에 대한 권리 투쟁을 억누르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화물연대의 대규모 쟁의행위에 대한 정부의 신경질적인 반응과 공권력 투입 계획 등은 기본적 인권으로서 민중의 생존권 투쟁마저 언제든지 압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와 미국이 억누르려고 하는 평화와 생존을 위한 민중들의 투쟁, 이것만이 당연하게도 민중들의 생존과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대안이다.
인권의 역사는 민중들의 생존/생활에 대한 권리 투쟁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 그 의미를 확대해온 역사였다. 인권이 결코 국가권력이 보장하는 틀 안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역사의 교훈이다. 23주기 5·18을 맞는 오늘, '광주의 두 번의 죽음'이라는 아픈 반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3년 전의 학살, 그리고 '신자유주의로의 대타락' 속에서 5월 광주의 국가기념일 지정과 뒤이은 두 학살자에 대한 사면. 5월 광주의 혁명정신이 민중 생존권 파괴와 인권에 대한 압살로 요약되는 신자유쥬의 구조조정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광주민중항쟁이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오늘에야말로 다시 되살려야 할 현실적 과거로 되살아오는 것은, 비유컨대 추모비가 아니라 열사의 외침을 통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