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1배로 계화도 도는 어민 고은식 씨


“새만금에서 부안 주민이 3보1배 한대”
같이 사는 언니가 집에 오자마자 얘기보따리를 풀어놨다.
“왜?”
“성직자들 3보1배 하는 거 보고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혼자 하겠다고...”
“정말! 제 정신이야”
내 발길은 어느새 부안을 향해 있었다. 주말을 맞아 바람도 쏘일겸 주민 혼자한다는 3보1배 응원도 할 겸 해서 나선 발걸음이다.
계화도 간척지를 지나니 컨테이너가 보인다. 사람들은 이곳을 기도의집이라고 부른다. 알고 보니 계화도 주민들은 성직자들의 3보1배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저녁 이곳에 모여 기도를 한다고 한다. 생계 때문에 3보1배 동참하진 못했지만 마음만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들어가보니 주민 두 명이서 3보1배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장본인은 고은식(41), 염정우(42) 씨. 3년 전 새만금 반대 지역주민들의 싸움이 시작되고부터 변함없이 동참하고 있는 주민들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죽어 가는 갯벌과 상처받는 이곳 주민들의 아픔을 위한 기도. 부안부터 서울까지 300km에 이르는 성직자들의 3보1배를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서, 그리고 투쟁을 포기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고자하는 마음으로 계화도 주민 고은식 씨는 지난 7일부터 혼자서 3보1배를 시작했다. 소리소문도 없이 조용히 시작된 고은식 씨의 3보1배는 계화도 일대를 돌고 있다.
3보1배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의 집에 와서 기도를 하고 갯벌의 노래, '도요새'를 부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노래만 불러도 눈물이 나는지 차마 마지막까지 부르지 못하고 노래를 마친다. 그리곤 3보1배는 시작된다. 고은식 씨는 3보1배를 하고 염정우 씨는 피켓을 들고 뒤를 따른다.
지나가던 마을주민이 멈춘다.
“은식이! 고생혀! 미안혀어!”
초라하다. 무릎보호대도 장갑도 없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니 비웃지 않으면 다행이다. 새만금 공사 중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할 뿐.
12시쯤 되니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의 회원 정명숙 씨와 그의 아이들, 신새벽(8)과 신푸른(6)이 3보1배에 동참했다. 뒤에서 아무 말 없이 따라가던 새벽이가 갑자기 준비운동을 하더니 이내 3보1배를 한다. 잠시 쉬는 시간 새벽이에게 물었다.
“무슨 마음으로 같이 했어?”
“혼자 시작했지만 저도 하고 또 누구도 하면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겠어요?”
뒷통수를 맞은 듯 멍하다. 내가 먼저 느낀 대로 실천하고 그 실천을 보고 다른 누가 동참하고 그렇게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할거라고 여덟 살 새벽이는 나에게 가르쳐준다.
이들의 얼굴에서 나는 분노도 다른 욕심도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갯벌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지 않을 수 있다면, 그저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갯벌에서 조개 캐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만 있을 뿐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얻을 수 있는 잘못된 세상. 노동자도, 농민도, 어민도 모두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계화도의 3보1배는 5월 24일까지 계속된다. (임성희 / 가톨릭노동사목 익산노동자의집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