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50대 중반의 한 여성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다. 천주교 전주교구 사회사목국에서 교화위원으로 14년을 일해온 그가 가지고 온 사건은 유력한 진범을 놔두고도 재판부가 재심을 받아주지 않아 형을 다 살아야했던 젊은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 2000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전주교도소에 복역중인 3명의 재소자들이 경찰의 강압수사와 알리바이 조작으로 진범으로 몰렸다며 재심을 청구한 바 있다. 당시 부산지검에서 이 사건의 진법으로 추정되는 조모씨 일당에게 범행 일체를 자백받은 상태여서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질거라 기대됐으나 기각되어 의혹을 키웠던 사건이다. 3년 전 본지(223호, 2000년 11월 28일)에서도 자세히 보도된 바 있는 이 사건은 MBC 피디수첩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지만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교화위원 신분으로 세 명의 젊은 재소자의 억울함을 벗기기 위해 99년부터 4년여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다녔던 그의 헌신적 열정이었다. 법원, 경찰서, 인권·법률단체를 찾아다닌 것은 물론 숨어살고 있는 피해자 가족까지 수소문해서 만나 세 명의 재소자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자 한 그.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김보리]
○ 교화위원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느날 막내 젖을 먹이다가 생각했어요. 이렇게 애만 키우다 죽겠구나, 뭔가 하지 않으면 죽을 때 마음에 걸리겠구나..그래서 그 길로 찾아 나섰어요. 재소자들의 자녀를 돌보는 분을 알게 됐죠. 새로운 세계였어요. 무연고자 고아들까지 50명이 넘었는데 할 일도 진짜 많더라구요. 내 인생에 후회없는 시간이었지.
○ 가족들의 불만은 없었나요?
처음 교도소일 시작할 때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때 아이가 걱정했지. 흉악범들 만나고 다니다 엄마 큰 일나면 어쩌냐고. 어차피 한 번 죽는데 그렇게 죽으면 순교이고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지. 그 뒤로 한 번도 내 일에 불평한 적 없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어요. 큰애가 나중에 건축학을 공부했는데 졸업작품으로 소년원을 설계하더라고.
○ 어떻게 그들의 사건을 접하게 됐나요?
전주교도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예비자 교리반에 온 재소자들과 얘기하던 중 그 친구를 만났어요. 99년 당시 21살이었는데 살인죄로 들어왔다길래 죽은 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라고 했더니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기도하냐'고 그래. 깜짝 놀랐지. 그때부터 이곳 저곳 찾아 다녀봤더니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하나씩 둘씩 진실이 나오는 거예요. 당시 이미 재심청구를 해놓은 상태였죠. 부산지검 검사가 강도범의 여죄를 추궁하던 중 이쪽 삼례 할머니 살해 진범이라는 진술을 받아놓은 상태라 나는 충분히 재심될 거라 믿었어.
○ 무엇 때문에 그들을 돕고 싶었나요?
개인적으로 남편이 억울한 일로 두 달간 감옥에 가게된 적이 있어요. 온 가족에게 너무 큰 시련이었죠. 그래도 우리는 변호사도 고용해 변론도 받고 해서 억울함을 풀 수가 있었죠. 그 아이들은 가진 것도 없고 배우지도 못한, 셋 중 한 명은 의사소통도 힘든 밑바닥 인생들이었죠. 좀도둑들을 윽박질러 살인범을 만든 거예요. 만약 그 아이들이 변호사라도 제대로 고용해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더욱 돕고 싶었어요.
○ 안타깝게도 모든 수고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심경은 어떠세요?
일을 진행하면서 숱한 벽을 만났어요. '법이란게 (힘이) 있는 사람들의 법이구나, 교도소 10년 헛다녔구나' 하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어요. 그때는. 그래도 희망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슬프고 큰 벽을 느껴요. 더 이상 해볼 것이 없으니까. 눈에 빤히 보이는 것도 이렇게 가면쓰듯 넘어가는 것을 보고..
○ 인권단체들도 많이 찾아다녔잖아요?
단체들은 주로 국가와 관련된 일만 한다고 하고 별로 도와주질 않아서 많이 서운했어요. 그래도 4년 넘게 이 일에 매달리면서 지켜보니까 숱한 사건이 있을텐데 그들이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죠. 단체 사람들 가정까지 팽개치고 일에 몰두하잖아요. 가족한테 감사해야 돼. 상은 가족이 받을거야.
○ 이 일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어느날 문득 깨달았죠. 그동안 재소자들을 만나면서도 무의식 속에는 '너는 죄수, 나는 평민' 이런 교만이 있었다는 걸.
솔직히 전보다 세상에 더 큰 벽을 느껴요. 나는 너무 세상을 모르고 살았구나.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건진 것 하나는 죽을 때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해주시겠구나 하는 믿음이에요.
○ 다시 이런 사건을 만난다면?
솔직히 두려워요. 너무 힘들어서. 이런 일 하는 사람 있으면 그 시행착오에 대해 그냥 심정을 나누고 싶어요.
○ 왜 자꾸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세요?
목숨까지 내놓고 하진 못했으니까요. 사건을 조작한 일에 연루된 경찰과 검사를 내 이름으로라도 고발하고 싶은데 그건 못했어요. 누가 나랑 같이 고발할 사람 없어요? 아줌마 혼자선 안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