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식 / 사회진보연대 정책부장
[편집자주] 지난 6일 전북민중연대회의 주최로 민주노총 교육실에서 반전토론이 있었다. 이 글은 '이라크 전쟁의 의미와 향후 한반도 정세, 그리고 평화운동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공성식씨의 글 일부를 전재한 것이다. 전문은 월간 '사회진보연대' 5월호에서 볼 수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 외피 쓴 점령
미국은 이라크 점령과 이후 재건활동이 마치 이라크인들의 해방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라크인들의 해방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친미정부를 세우고 석유자원 등 일부 거대 기업들의 이권이 걸려 있는 부문을 장악하고, 독식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이들이 인도주의적 원조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석유-식량 프로그램이란 이라크 민중의 것이 되어야 할 석유를 팔아 그 돈으로 식량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10년간의 경제봉쇄와 침략전쟁으로 이라크 민중의 삶을 고통에 빠뜨린 범죄자가 인도주의의 가면을 쓰고 자원을 약탈하여 남은 이윤의 일부를 되돌려 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인도주의적 원조가 아니라 날강도 같은 행위다. 이런 미국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행하는 어떠한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이나 재건 사업도 결국은 이라크인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대북 군사 위협 중단시켜야
한편 이번 전쟁에서의 군사적 승리를 기반으로 중동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물론 당장에 군사적인 대응을 시작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시리아와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들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북한과 미국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북한 역시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쉽게 응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평화적 해결'의 주장이 결국 한-미동맹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있음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투쟁들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이번 전쟁을 통해 럼스펠드식 '속전속결론'이 현실화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래 한미동맹회의에서 거론된 주한 미2사단의 한강 이남 배치는 자국군을 북한의 장거리포와 다연장포 사정권 밖으로 빼내는 대신 전술핵을 포함한 본격적인 공격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일련의 군사적 긴장을 강화하는 행위를 폭로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반전평화 투쟁과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운동을 밀접히 결합해야 한다.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표상된 자본주의 위기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쟁의 수행이라는 형태로 표상되는 국가간 체계의 위기가 하나의 전선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반신자유주의는 반전이 아닐 수 없으며 반전은 반신자유주의가 아닐 수 없는 긴밀한 결합의 선을 찾는 것과 그 조직적 틀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대중으로서의 계급을 발견하는 문제가 될 것이며, 또한 신자유주의 반대 속에서 국제주의가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국면은 다시 전쟁이 가시적으로 진행되던 국면에 비해 폭발적인 대중투쟁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레닌은 '전쟁이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언급하며 전쟁을 정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하여 전쟁을 '정치화'시키고자 했다.
그렇다면 전쟁이 종결되었다는 선언과 종전 이후 근거없이 떠도는 낙관적 관측에 맞서 우리는 전쟁 그 자체와, 전쟁을 둘러싸고 형성된 대중의 저항과 그 주체들을 재-정치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반전투쟁의 주체들을 세계화된 공간 속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극단적인 폭력의 문제들과 대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