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 전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근 충남 예산에서 발생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을 둘러싼 일부 수구언론의 보도태도는 '광기',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식도 지키지 않은 채, 오히려 이번 사건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실현의 도구로 삼고자하는 일부 수구언론의 보도태도와 이를 무비판적으로 용인하는 우리사회의 현실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여진다.
진상규명 없이 전교조비난에 열 올리는 수구언론
먼저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들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전교조가 자살의 직접 이유라고 몰아갔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부터 이들 신문들은 각각 <초등학교 교장, 전교조와 갈등으로 자살>(조선일보), <전교조 사과요구 받던 교장 자살>(동아일보) 등을 통해 전교조를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단정했다. 진 교사는 '아버지 같은 교장에게 차 한잔 대접 못 하는 패륜 교사'로 매도당한다. 물론 여기서 하루 전에 열렸다는 교장단 회의에서의 질타나 교감의 사과반대가 오히려 서교장의 자살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배제된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의 중요한 실체 가운데 하나인 교육현장의 문제, 즉 여성에 대한 차별과 기간제교사문제는 완전히 사장되고 만다. 오히려 일부여론은 '그깟 차 한잔 타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냐'고 진교사를 몰아부치기도 한다.
이후 수구언론은 이번 서교장의 죽음을 전교조 비판의 상징적 사건으로 부각시키기 시작한다. 조선일보는 4월 7일자 사설 <교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학교의 현실>에서 "우리의 학교에서는 지금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참아내기 어려운 모욕을 가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인민재판식 '인격(人格) 살인'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면서 전교조의 서면사과요구를 비난한다. 전라일보도 4월 7일자 사설 <전교조 투쟁과 교장의 죽음>에서 "교권을 침해하고 비하 발언을 했다면서 전교조로부터 공개사과 요구를 받고 인터넷에 집중적인 비판 글이 올려진 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은 지금 무소불위의 전교조 투쟁의 병폐가 어디까지 이르렀는가를 시사해주는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면서 이번 사건이 전교조의 투쟁에 기인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서교장의 죽음 이용하는 수구언론
하지만 이들의 보도는 최소한의 사실보도 원칙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지도 않은 시점에서 마치 전교조가 사교장 죽음의 직접원인이었던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보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 교장이 자살한 시점이 '차 시중 사건'을 둘러싸고 전교조와 갈등을 빚은 시기로 전교조가 도의적 책임을 느낄 수는 있지만, 애초에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차 시중 사건'에 대한 전교조의 대응이 교권을 지키고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합당한 것이었다면 비난의 화살이 전교조에 집중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서교장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심부름을 시켜 사직서를 내게 된 사태와 이에 대한 전교조의 항의라는 점을 생각할 때, 언론의 의제설정은 기간제교사의 문제를 포함한 우리 교육계의 뿌리깊은 잘못된 관행의 문제에 두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보수교단과 보수언론의 대단결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을 전교조 때리기라는 정치적이용물로 활용하려는 일부 수구언론의 보도태도라 할 것이다.
전교조에 대한 비판과 이번 사건의 실체는 명백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 교장의 자살을 앞세워 '전교조 때리기'라는 의도로 여론 몰이를 시도하는 것은 언론의 본분을 벗어난 처사다. 오히려 서교장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수구언론의 보도태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과거 수많은 젊은이들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던진 목숨마저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고 빈정대던 수구언론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한국언론의 현실에 절망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