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형제자매들과 제 마음을 이렇게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새만금 갯벌에서 서울까지 기나긴 여정을 떠납니다. 도착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이 길고 긴 여정이, 저도 두렵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무척 심란하고 긴장됩니다. 진심 어린 걱정을 담아 말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갈 거냐며 무슨 이벤트인냥 은근히 생색내기로 넘겨짚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형님 문정현 신부는 차라리 삼보일배를 시작하는 3월 28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와 수경스님은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아픔을 나누며, 과연 삼보일배의 길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다가올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와 번민으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신 예수님 마음을 감히 헤아려보았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셨을까요, 하고 깊은 침묵 속에 여쭈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내 복잡한 심정이 89년 방북 때의 그것을 닮은 것 같기도 해 저 혼자 위로해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 귓전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로 희생된 죽음들과 죄 없는 새만금 갯벌과 죄 없는 이라크인들의 고통이 같은 울림으로 메아리칩니다. 그것들은 연민과 사랑을 잃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죄악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별개의 사건 같지만 모두 똑같은 야만스런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탐욕과 물질지상주의가 생명의 존엄성과 귀함 위에 군림하는 모습입니다. 가볍고 쉽게 살려는, 나 하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반그리스도적인 행태가 만연한 탓입니다. 결국 바로 우리 자신과 공동체 모두가 그 대가를 참으로 비싸게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죄도 없던 예수님을 강도 대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아우성치던 군중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군중들 속에 바로 우리 자신도 함께 서서 고함치고 손가락질하고 있음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끝없는 욕심과 눈앞의 편리함만을 쫓는 태도가 무고한 새만금 갯벌을 죽이고 무고한 자연을 파괴하는 일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쟁놀이로 인해 죽어 가는 이라크 양민들과 어린이들의 고통은 바로 우리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허용한 것입니다. 대구 지하철 대참사는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겉치레에 치중하는 우리의 그릇된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만든 것입니다.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비록 두렵고 긴장되지만, 저는 이 긴 여정을 단순한 마음으로 떠나겠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죄 없는 생명들이 죽어가고 참 평화가 몹시 절실한 때이니 더더욱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새만금 갯벌에서 십여 년이 넘게 벌어지고 있는 저 소리 없는 총성과 떼죽음, 그리고 제발 전쟁을 중단해달라는 이라크 양민들의 피 어린 호소를 함께 가슴 속 깊이 품고 이 길을 떠나겠습니다. 우리가 새만금 갯벌을 살릴 수 있다면, 소리내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것들의 소중함과 귀함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참혹한 전쟁도, 저 터무니없는 죽음과 공포의 행진도 멈추게 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입니다. 이런저런 타산과 계산을 허용하지 않는 길입니다. 생명과 죽음, 그 가운데 중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하여 삼보일배의 여정을 끝까지 갈 것입니다.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살고자 하는 이는 죽고, 제 목숨을 버리고자 하는 이는 산다고 했습니다.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없이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누릴 수는 없으니, 저는 이 고행을 기쁘게 받겠습니다.  

부안에서 서울까지 305km라 합니다. 길고 긴 여정이며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 따라 내 온 몸을 낮추어 보이지 않는 생명의 소리들, 고통받는 그들의 소리를 듣겠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파괴되고 있는 자연, 전쟁과 온갖 폭력 속에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겠습니다. 나의 땀 한 줌, 나의 기도 한 마디가 죽어 가는 새만금 갯벌의 생명들과 공감을 이루고 나눠질 수 있도록 간절히 마음 모으겠습니다.  


2003년 3월 28일  
문규현 바오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