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족회 등 국가인권위 점거, 무기한 농성


50년 이상 침묵의 동굴에 갇혀 있던 1950년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전국민간인학살유족회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가 지난 27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를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숨죽여 살아온 50년, 터져 나온 울분
농성단은 이날 국회가 학살규명 통합특별법 제정할 것과 정부가 전국의 학살 실태를 즉각 조사해 진상을 규명할 것을 요구하며 회견을 갖고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에는 강화, 문경, 금정굴, 여순사건, 익산역 유족회 등 전국 각지의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유족회와 종교계, 학계, 인권·사회단체 활동가 40여명이 참가했다.
농성단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미군, 국군, 경찰과 우익청년단체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의 수가 100만명이 넘는데도 사건진상규명은커녕 평생 사회의 침묵과 멸시 속에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며 "살아남은 유족들이 하루가 다르게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 과거에서 비롯된 폭력의 사슬을 끊어낼 유일한 실마리가 바로 민간인학살 문제임을 강조했다.

한 걸음 떼기 이렇게 어려워서야
농성단은 다음날인 28일 지난달 27일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 요구하는 제1차 인권위 집단 진정'에 이어 인권위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2차 인권위 집단 진정을 내고 148건에 이르는 민간인 학살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에 국가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민간인 학살 문제는 87년과 88년 민주화운동의 절정기 이후 제주 4·3항쟁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진상 규명의 목소리가 일기 시작하면서 99년 거창 특별법의 제정과 4·3특별법, 노근리 사건과 각지의 민간인 학살 문제가 폭로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김원웅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47명 공동으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제출되었는데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조차 회부되지 않고 있으며 내년 총선으로 인해 올 하반기부터는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고 16대 국회가 종료되면 특별법안도 자동 폐기되어 특별법 제정운동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농성에 각계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지난 28일에는 전국 26개 인권단체가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국가는 언제나 인권과 생명권을 지켜야 하는데도 전쟁을 이유로 재판이나 어떠한 법적 절차도 없이 민간인을 100만명 이상 학살한 야만의 역사를 묻어버리는 일은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다"며 "민간인학살 문제 해결없이 민주주의와 인권은 실현될 수 없다"며 노무현 정부와 정치권에 민간인학살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